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감내하기

by 이주리

고등학교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될 줄 알았다. 한국에, 서울에, 용산구에, 고등학생에, 여자만 모여 있는 그 표본 집단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렀다.


그런데 대학교에 가고, 외국에 나가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나의 표본 집단은 점점 넓어지고 그만큼 나는 쪼그라들었다. 원하기만 하면 다 된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세상에는 너무 다양한 사람이 많아, 게다가 나보다 나은 사람은 더 많아.’라는 생각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꾸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긴 한데 그럴수록 나는 알게 모르게 위축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얼마나 많든 간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나뿐이다. 이 사람도 돼보고 싶고, 저 사람도 돼보고 싶지만 나는 그저 나 밖에 될 수 없고, 나 자신으로밖에 살 수 없다. 이 사실은 태어나고 대략 이십몇 년이 지난 후에 겨우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 나는 나로 살아가기가 가끔은 숨이 막힌다. 어떤 상황이건 간에 그 일을 겪어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나뿐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겪어주면 좋을 텐데 하고 소망해 보지만 그건 헛된 소망일 뿐이다.


하지만 태어나고 대략 삼십 년 정도 지난 후에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게 되었다. 가끔 내가 지겨워지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때, '너는 재밌어, 너는 무언가야.' 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견딜만 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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