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맞지 않는 건 없구나

by 이주리

우습게도 난 매일 머리를 말리며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 맞지 않는 건 없구나. 찾지 못한 것뿐이구나.’


카메룬에서 지낼 때 원래 사용하던 헤어 드라이기가 고장 나서 현지에서 빨간 헤어드라이기를 구입하게 됐다. 영국 브랜드의 드라이기 었다. 상자에 들어가 있던 헤어드라이기를 집으로 가져와 사용하려고 열어보니 한국과 같은 모양의 플러그를 사용하는 카메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세발 플러그였다.


결국 다시 마트에 가서 환불을 요청했지만 마트 직원은 어댑터를 공짜로 주겠다며 어댑터와 함께 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해서 한 동안 그 드라이기를 잘 사용하다가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집에 있는 드라이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 빨간 헤어 드라이기는 잊게 되었다.


다시 모리셔스로 오는 짐을 싸게 되었을 때 해외생활로 방치되어 한없이 길어버린 머리를 위해 다시 그 빨간 헤어드라이기를 챙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당시 공짜로 받았던 어댑터가 없었다. 모리셔스에서 어떤 모양의 플러그를 사용하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현지 가면 어댑터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챙겼다.


모리셔스에 도착하니 내가 가져간 모든 전자기기를 통틀어 쓸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바로 그 빨간 드라이기였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모리셔스는 영국과 동일한 세발 플러그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댑터를 사지 않았던 며칠 동안 호텔에서 핸드폰 충전은 하지 못해도 드라이기만큼은 원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매일 머리를 말리면서 빨간 헤어 드라이기를 본다. 카메룬에서 한국에서 어댑터가 없으면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모리셔스에 오니 꼭 맞다. 맞지 않아서, 쓸수 없어서 환불하려고 했던 그 아이가 여기에 꼭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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