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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s Mar 10. 2022

"아무것도 아니야"_나의 아저씨

드라마 리뷰




"행복하자". 지안이가 처음 웃었다.





삼일 동안 달려 정주행해버린 '나의 아저씨'.


따뜻한 대사가 콕콕 박히는 웰메이드 드라마... 한 장면도 버릴 장면이 없었다.




보면서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지만, 한때는 세상처럼 느껴지던 어떤 사람.


뭐든 정답만 말할 것 같은 사람에게서 정 가고 호감 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날. 너는 주는 게 더 편하다는 마음의 울림이 적지 않은 사람이라고 아무런 무게 없이 그런 말을 하던 사람.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고, 그래서 무섭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건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 사람을 아는 건 어려운 게 아니지만 그래도 너를 아는 건 조금 쉽지 않았다고. 지난 10년과는 다른 의미의 올 한 해가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도 그 속에 네가 있었다고.




어쩌면 그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사람이 불쌍했다. 언제든 어디서든 갑자기 죽어버릴 것 같기도 했다. 늘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그 위치도 가여웠다. 그는 내가 불쌍하다고 했다. 평화의 사도처럼 굴지 말라고 했다. 추우면 끼고 더우면 벗는 장갑처럼 살지 말라고도 했다. 버림받을까 봐 낑낑대는 강아지가 아닌 안으로 충만해 흘러넘치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자기가 필요 없을 거라고.




더 이상 그 사람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 후로도 삶의 순간순간마다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그 해의 모든 선택이 실패가 아닌 기억으로 남을 텐데. 난 그렇게 살고 있나.




행복하기 위해 내 곁에 있어줘, 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각자 행복하자, 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참 오랜만에 떠올렸다. 사원증을 목에 건 평범한 회사원이 된 이지안을 보고 얼굴 전체에 미소를 띠던 박동훈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뭔지 우리가 애달파하는 게 사랑이 맞는지... 누군가에게 '엄청' 괜찮은 사람, '엄청'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윤상원은 우리의 추억이다.





하나같이 다 불쌍한 인물들의 총집합인 드라마지만, 정정희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자꾸 끝이 아닐 것 같은 마음을 매듭짓고 윤상원에게 추억이라는 이름을 주기까지, 자그마치 20년의 세월이 걸린 정희. 입 밖으로 꺼내고, 추억이라고 이름 붙여 버리면 영원히 끝일 것 같아 놓지 못하는 그녀가 참 가여웠다. "윤상원은 우리의 추억이다"... 주문처럼 외우면서 살아내야지. 지나간 기억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면서 가짜 생명을 주지 말자. 충분히 아파하고 나면, 그 기억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라 그저 추억일 뿐이다.




어떤 기억은 너무 괴로워서, 아예 도려내듯이 잊어버리는 게 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리하려면 하나하나 끄집어 내야 하고, 끄집어 내는 일조차 괴로워서 그냥 덮어놓고 묻어버리고 산다. 지워버리면 그만인데, 지우려면 봐야 하는데 볼 수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늘 일시정지 상태로 지낸다.




나는 그 기억이 너무 아파서 그래서 어려운 건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그걸 통째로 지우고 싶지 않아서 힘든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고 해서 행복했던 기억들마저 도려내 버리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았던 내 인생을 부정하는 건데. 고작해야 놓지 못하는 내 마음 하나 때문에 소중한 추억마저 쓰레기봉투에 담아내 버리기에는... 언젠가 정말 행복했던 시간들도 참 많았으니까. 그게 나를 살게 했던 시절들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정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윤상원을 통째로 도려내는 대신 너무나 행복했던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가끔 꺼내보는 앨범의 사진처럼. 아 그래 나 이렇게 사랑했었지, 사랑받았었지. 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지, 용기 얻으면서.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동훈. 가장 행복한데 불행한 사람.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볼 수 있어서,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쓰인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내 행복을 보류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이게 남들이 원하는 일이라고 늘 착각을 한다. 결과적으로 미운 사람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 미안하고 불쌍한 사람은 매일 떠올라 괴롭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해도, 의도치 않은 빌런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콕콕 쑤신다.




차라리 나쁜 년이 되지, 짠한 년은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짠해서 자꾸 내가 밟히고, 그래서 자꾸 불행해지는 사람이기 싫다. 다른 사람에게 내 선택의 이유를 전가하지 말고, 오로지 나를 위해 결정하기로 하자. 내가 아무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아 한다. 어떤 일이 있다고 해서 어떻게 되지 않는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자. 동훈과 지안이 반복하던 말. 행복하자. 나를 위해서 행복하기 어렵다면, 나를 불쌍히 여기며 마음 아파할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치열하게 행복하자. 어떻게 행복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뻔뻔하고 욕심스럽게 그렇게 나의 만족과 평안을 좀 더 생각해 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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