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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Mar 16. 2020

하늘을 사랑하는 이유

가장 멋진 사람은 모든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두부와 산책하는데, 하늘이 너무 예뻤다. 하늘을 보니 갑자기 풀밭 가운데 누워서 하늘이 주는 것을, 내게 열린 하늘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벤치에 누워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거의 져서 청색으로 물들었는데, 아래쪽 하늘은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노을이 져가는 모습이 할 수만 있다면 눈에 영원히 담아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벤치에 누우니 시야에는 하늘과 나뭇가지, 그리고 별이 들어왔다. 이렇게 열린 하늘을 볼 수 있으니 정말 축복받은 하루다.     

픽사베이


나는 하늘을 좋아한다. 똑같은 하늘은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름은 매번 바뀌고, 구름이 없는 하늘이라 해도 시간대별로, 계절별로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바라보는 장소, 바라보는 기분, 나의 모든 상태에 따라 내가 보는 하늘은 매번 달라진다. 사람의 뇌도, 기억도 한결같지 않기에 정말 똑같은 하늘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을 보는 나 자신이 다르면 그것도 다르게 보이니.     


나는 하늘을 좋아한다. 지금 이 순간의 하늘은 지금 이 순간에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는 내 친구인 J양과 학교가 끝날 때마다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가곤 했다. 어느 날은 땅바닥에 누워 있기도 했는데, 어떤 구름 하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 다시 구름을 보니 그 구름이 사라졌다. 놀란 나는 그걸 J양에게 말했더니, 바람이 불어서 구름이 사라진 거라고 했다. 구름은 둥실둥실 떠서 바람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니, 결국 우리가 같은 구름을 또다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의 하늘은 지금만 볼 수 있다는, 한정적이라는 점이 내가 하늘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나는 낮의 푸른 빛 하늘도 좋아하지만 밤의 하늘도 좋아한다. 예전에 별에 격하게 빠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날 밤에 대뜸 별을 보러 나갔다. 그게 눈이 오고 난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롱패딩을 입고 부모님과 함께 산책하러 나와서 길을 걸었다. 발밑으로는 눈이 뽀득뽀득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 주변 공터가 빛이 없어 그나마 별이 잘 보일 것 같아 그곳으로 갔다. 산책을 나온 건지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고개를 드니 별이 쏟아지듯 빛나는데, 내가 몇 살이 되든 그 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누군가는 별 몇 개 있지도 않은데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별들은 내게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본 별이기 때문이다. 처음은, 특히 어린 날의 처음은 기억에 오래 남기 마련이다.     


별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한다. 직각으로 고개를 드니 목이 굉장히 아팠는데, 그런데도 그 자리에 서서 별을 계속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구름처럼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지도 않는 별을 그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볼 수 있던 이유는 별을 바라본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아서였던 것 같다. 지금 별을 보고 있고, 차가운 겨울 공기가 뺨에 닿고 있다는 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스럽고 툭 치면 깨질 것처럼 가련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벅찬 마음으로 한참 동안 계속 별을 바라봤다.     


예전에 세부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밤에 가족들과 호텔 프라이빗 비치 주변을 산책하다가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것을 보고는 저기 누워서 별을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주변에 시야를 가릴 만한 나무나 구조물도 없었고, 하늘이 뻥 뚫려 있어 별도 잘 보였기 때문이다. 생각난 대로 바로 실행했다. 부모님과 함께 그곳에 누웠다. 미세먼지가 없어서인지, 우리 동네에서 별을 봤을 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별들이 훨씬 밝게 빛났다.     

픽사베이


별을 계속 보고 있으면 눈이 적응해서 더 잘 보이게 된다. 별 삼매경에 빠진 것처럼 한참 누워서 별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순간 자체가 정말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이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에서부터 두둥실 떠올라왔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시켜서 하루에 3개씩 노트에 감사 일기를 적을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숙제 때문에 억지로 짜내는 감사와는 결이 달랐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전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니까. 마음속에서 우러난 감사는 사람을 충만하게 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미소짓게 하고, 나도 모르는 새 타인을 상냥하게 대하게 한다.     


모든 것이 고마웠다. 그곳으로 놀러 가지 않았다면 별도 보지 못했을 거고, 내가 별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게 감사한 일인지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별똥별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별이 쏟아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졌다. 반짝이는 별이 내게 축복했다. 슬픈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아. 이 거리에서 보면 큰일도 아니니까. 다 괜찮아질 거야...     


누워서 별을 보며 별자리를 찾았다. 좋아하는 별도 찾아보고, 옆의 아빠에게 설명도 해 주었다. 엄마는 피곤했는데 그새 자고 있었다. 별 아래에서 자는 잠은 어떤 느낌일까?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반짝이는 별에게 내가 물었다. 제 인생도 그렇게 찬란하게 반짝일 수 있을까요? 별이 반짝였다. 대답은 없었다. 대답은 별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     


별을 볼 때는 기분이 달라진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실상은 해 놓은 것도 없으면서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자만심이 들 때, 별을 보면 이 커다란 우주에서 나는 너무나도 작디 작은 존재임을 직시할 수 있다. 이렇게나 작은 내가 거드름 피우고 잘난 척 하려고 해 봤자 무한한 우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허풍떨기 전에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것이다. 자연보다 위대한 인간은 없다.     


반대로 걱정되는 일이 있어도 그런 일에 얽매이는 내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일들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내가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별을 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상황을 달라지게 만들 용기가 나고, 방법도 떠오르게 되어 있다. 별을 보고 있으면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별의 고동이 내 마음마저 숨 쉬게 한다.


가장 멋진 사람은 모든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저녁 때 우리 집 강아지 두부와 산책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부는 모든 것에 행복해하는 강아지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낙엽을 잡으러 돌아다니면서도 좋아하고, 기뻐한다. 그렇지만 아직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수양이 부족한가 보다. 가끔 폭발할 정도로 화도 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 불어넣어 준 숨을 생각하며 멈추지 않고 다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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