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동대문 DDP에서 전시 중이라는 패션 & 라이프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소위 우리를 끌고 가는 시대정신, 반짝이는 (하지만 금세 사라지고 마는) 유행들과 달리 100년 이상 지속되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한다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미나 페르호넨. 설립자의 이름이 미나가와 아키라여서 '미나'라는 이름이 들어가나 했는데 그건 아니고 핀란드어로 '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없어져도 계속 이어지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타이밍에 쓸모를 증명해내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려지고 마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말도 행동도 생각도 느린 나는 너무 어지러웠다. 그런데 자신의 속도에 신념을 가지고 브랜드를 이끌어나가는 리더, 그리고 그 속도를 사람들에게 크게 인정받는 브랜드를 보니 마음에 큰 위로로 다가왔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20년 정도 살고 계셨던 교회 자매님과 일주일에 한 번 일본어 성경 읽기를 하고 있는데 어제 모임이 있었다. 자매님이 패브릭 디자인을 하셨던 분이라 반가운 마음에 이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자매님이 다녔던 학교의 선배님이시랜다. 갑자기 내적 친밀감이 더 높아져버렸다. 한국에 있는 전시회를 못 보지만 일단 "미나 페르호넨"의 창업자 아키라 미나가와의 개인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로 발돋움한 그의 포스팅들은 영어로도 많이 쓰여있지만 원어인 일본어로 쓰여있다. 그의 생각을 더듬더듬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그가 책을 썼고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까지 되어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어제 일본어 성경 읽기 모임에서 "사도행전"을 처음으로 다루게 되었는데 일본어로 "しとうのはたらき"라고 읽는다고 했다. はたらき (일, 활동)이라는 단어가 미나가와 아키라의 책 제목(生きるはたらくつくる)에도 뙇! 나와있으니 내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센스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어젯밤부터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꽤 많아서 급하게 브런치에 따로 모아두려고 한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해서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를 해나갈 것 같다.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 쉬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가 세웠던 철학이 나에게도 단단한 심지가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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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를 돕다>
바느질은 잘하지 못했다. 잘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하기도 어려웠다. 능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오랫동안 해나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이상한 사고방일지도 모른다.
의외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훨씬 잘 알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나보다 더 정확히 나를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 파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이후로 30년 이상이 흐른 지금,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우연이 가져온 결과들에 놀라면서도 그저 잠자코 따라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다양한 제안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화복장학원 야간반>
하지만 나는 패션 업계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한 가지 마음먹은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애초에 못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데는 고작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을 꾸준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도중에 그만둔다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보잘것없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것은 일을 잘 못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보다 훨씬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리메꼬>
하나의 디자인이 정석화되면 변하지 않고 계속 이용된다. 오랜 시간 사랑받으면서 디자인의 가치도 높아져간다. 반면 파리 컬렉션의 이면에는 시즌마다 어지럽게 변화하는 패션의 최첨단이 있었다. 그 모습도 놀라웠다. 패션의 세계에 강력하게 끌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핀란드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은 어느 쪽에 더 깊은 공감을 느끼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새것보다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스웨덴에 도착해서는 스톡홀름에 있는 골동품숍과 헌책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오래 머무르며 시간을 들여 물건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시로카네다이 직영점>
인품도 훌륭하고 미나의 옷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점장을 부탁한다면 이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시자와에게는 밝은 아우라가 있었다. 고생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타입으로 나가에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직장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다만 눈앞에 놓인 일을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할 때의 고충이나 대가에 대한 감정도 달라진다. 이 점을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잔고 5만엔>
미나의 옷을 찾아주는 손님들과는 시즌마다 끝이 나는 긴장관계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안정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논리적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감정적으로 폐기는 할 수 없었다. 남기지 않으려는 성향은 어시장에서 한 아르바이트 경험에서 온 것 같다. 버려지는 부분을 최대한 만들지 않을 것. 이것은 스승님의 엄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참치를 뼈에 따라 세심히 손질하지 않으면 뼈 쪽에 살이 남는다. 그렇게 낭비하지 않도록 수련을 거듭했다. 일본 요리는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도미를 손질해 회를 뜰 때도 살이 붙은 뼈로 탕을 만들거나 달게 조려 먹는다. 부위마다 맛도 다르다.
<적어도 100년은 지속되기를>
나는 에키덴의 경험도 있기 때문에, 잇는다고 하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바통을 건넬 때는 기진맥진해 쓰러질 것처럼 넘겨서는 안 된다. 다음 주자가 달리기 시작해 가속하려는 때 확실하게 바통을 건네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을 맡긴다.
100년에 걸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지반을 다지는 일,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생각이 흔들림 없이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