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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영 Mar 14. 2022

무성장(無成長) 선언

“해영님, 이 프로젝트 끝나면 성장하겠어요.”

“싫어요. 성장 싫어요. 저 무성장 선언했어요...”

요즘 유행 하는 비혼 선언이 아닌 나는 무성장을 선언했다. 이런 선언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난 적도 들어본 적도 없지만, 있었으면 좋겠다. 동질감을 느끼고 싶다!


‘어디 없나요? 무성장인(無成長人).’     


무성장을 선언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이미 나는 크니까, 이미 나는 잘 컸으니까. 외적으로 이미 큰데, 신장도 175cm인데! 마음도 호수 같아서 아량도 넘치는데, 여기서 더 커져 봐야 얼마나 더 많은, 나은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미래에 대한 기대도 바람도 없다.     


나는 왜, 언제부터 무성장을 선언하게 되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근거로 들자면 처음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체육 시간에 수행평가로 줄넘기 2단 뛰기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일명 쌩쌩이라고 칭한다. 쌩쌩이 0번부터 5번까지 하면 가장 낮은 점수인 D점이고, 6번 이상부터만 점수가 C가 되는 점수체계를 갖고 있었다. 보통의 친구들은 6번 이상을 하거나 A를 받자는 목표를 세우지만, 매년 나는 하나만이라도 성공하는 게 작지만 큰바람이었다. 나는 줄넘기는 잘하지만, 쌩쌩이는 한 번 하는 것도 어려웠다. 수행평가 당일까지 한 번을 한 회수가 다섯 번이 채 되지 않는다. 몸이 무거워서 그런가,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아마 둘 다 해당한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3년 동안 쌩쌩이를 2번 이상한 적이 없다.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내가 ‘1’이라는 경험을 얻은 것에 항상 뿌듯했다. 1번이나 한 번도 못 하나 5번 하나…. 점수는 다 같다면 그저 꼴등 취급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별로였다. 해낸 거와 해내지 못 한 것은 다른데, 그저 나를 해보지도 않은 사람인 척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그냥 열심히 살았어도 열심히 산 티를 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무성장을 선언했다.   



“혜영님, 이 프로젝트 끝나면 성장하겠어요.”

“싫어요. 성장 싫어요. 저 무성장 선언했어요...”

라고 본능이 앞서 감정적인 답변이 먼저 튀어나오곤 한다.      


다시 이성의 끈을 잡고,

“네, 그래도 배우는 게 많네요.”

라며 고난을 기회로 삼으라는 그대들의 위로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람인 양 태도를 바꿨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3.0%를 유지할 거라는 기사가 연초에 쏟아졌는데, 3이라는 숫자에는 우려가 가득했다. 경제학이 아닌 숫자로만 바라본다면 3은 양수이기에 +가 맞지만, 경제학에서 무수히 많은 지수와 비율과 값들이 존재한다. 만약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면, 그것은 결국에 가깝다는 걸 의미한다. 쉽게 말해 월급이 조금 오르긴 올랐는데, 매일 같이 마시던 커피 값도 오르고, 일주일에 두 번은 시켜 먹던 치킨값도 월급 상승률보다 더 물가가 떠오른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테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월급 빼고 다 올랐어”라고 외치는 이들도 많다.     


 이처럼 미비한 성장은 진정한 성장이 아닌 도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간접 경험을 통해 배웠다.     

나도 안다. 사업하는 이에게 무성장 선언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고객들에게 신뢰를 잃을 수도 있는 발언이라는 것을. 무성장을 선언했지만, 그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도태의 삶을 택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말재주나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본래 의미를 전달하기가 어렵다. 근데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타인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키려 애써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동아줄을 만났다.     

요즘 것들은 수직적 상승 아닌 수평적 확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문장을 MZ세대를 설명한 기사에서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찾았다. 내 사랑. 아니 내 정답.


스스로 요즘 것들보다는 꼰대에 가깝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나에게 요즘 것들과의 유일한 공통점을 이렇게 발견하다니. 상대를 꺾는 수직적 상승이 아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수평적 확장을 하는 시대. 그게 오늘이다. 말재주가 없어 그저 성장 싫다고 말하던 지난날을 안녕하고 운명처럼 나를 변명하고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드디어 찾았기에 기쁘고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공유하고자 한다. (출처: 폴인페이퍼, vol.13, ‘수평적 확장을 알려준 900KM’)     


이혜민, 정현우 부부가 운영하는 콘텐츠 스튜디오 900KM은 ‘나다운 성장’을 위한 팁을 세 가지 제시하고 있다.     


1. 독창적인 관점 갖기

: 앞서간 상대를 경쟁자로 보지 않고 레퍼런스로 삼을 것, 이를 체화하고 나만의 것 만들기.

2. 최소 확신의 숫자, 51%

: 최소한의 확신이 있다면 일단 시작하고 반응을 확인해 방향을 재설정하여 목표에 도달하기.

3. 끊임없이 질문하기

: ‘왜’하는지 계속 생각해 답을 찾아가다 보면, 그 일이 나를 먹여 살릴 수도 있다.   


       

기사를 읽고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일은 중학교 시절 유행하던 N.I.E 이후로 10년 만인 것 같다. 자발적으로 기록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기사를 만든 것은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겠다. ‘내 정답’을 찾은 이후, 무성장 선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저는 상승이 아닌, 확장하는 성장을 지향합니다.”       


                            


제목 : 미정

작가 : 해영


목차

1. 신고합니다

2. 서른 살 생일 선물

3. 모든 게 처음이라

4. 안녕하세요. 작가님!

5. 모르는 게 넘친다

6. 벌써 1년

7. 숭문당

8. 무성장 선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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