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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보람 Jul 04. 2023

모든 행동은 다 배운 것이다.

안 가르쳐 줘도 아는 나쁜 짓은 어디서 배웠을까

서윤이네 가족이 마트에 갔습니다. 장을 보러 가는 길 장난감 코너가 보입니다. 서윤이가 '어어' 하고 가리키자, '그래, 잠깐 구경만 하는 거야. 오늘은 아무것도 안 사!' 다짐을 받고 장난감 코너에 들어섭니다. 서윤이는 이것저것 구경하다 로봇 앞에서 사고 싶다는 강력한 눈빛을 보냅니다. 엄마는 '오늘은 안 돼. 구경만 하기로 했어.' 하고 이야기합니다. 서윤이는 더욱 강력한 눈빛과 함께 '으으응!!' 소리를 냅니다. '안된다 했지, 오늘은 구경만 하고, 다음에 사자.' 엄마도 오늘은 만만치 않습니다. '안 돼.' 결국 서윤이는 마지막 필살기를 씁니다. '와아앙!' 마트에 드러누운 서윤이, 당황한 엄마. 둘의 대치는 오늘도 엄마의 패배로 끝납니다. '오늘만 사는 거야. 다신 다음엔 절대 안 사준다!' 로봇을 꼭 쥔 서윤이는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응!’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생각합니다. ‘드러눕는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아무도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디서 보고 배운 걸까?’ 서윤이는 어떻게 배운 걸까요? 


아이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소리, 표정, 몸짓, 놀이를 보고 따라 하면서 다양한 기술을 익힙니다.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떤 행동을 나도 모르게 했을 때 다른 사람의 ‘반응’이 내 의도와 맞아떨어지면 아이는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동일한 행동을 반복, 지속할 수 있습니다. 위 사례에서 서윤이는 속상한 마음에 드러눕고 울었던 것인데 얼떨결에 ‘마트에서 드러누우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학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NDBI의 B(behavior) 요소인 응용행동분석(ABA)에서는 행동을 생각할 때 행동뿐 아니라 행동 앞뒤의 상황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행동의 의미를 파악합니다. 행동 앞의 상황은 선행사건(Antecendent)으로, 행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주어지는 자극 또는 사건을 말합니다. 행동(Behavior)은 ‘기분이 나쁨’, ‘하기 싫음’ 등의 상태가 아닌 ‘웃는다’, ‘먹는다’, ‘눕는다’ 등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어떤 움직임을 의미합니다.  행동 뒤의 상황은 후속결과(Consequence)로, 행동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를 말합니다. 선행사건-행동-후속결과를 이어서 살펴보는 것을 각각의 머릿글자를 따 ABC 분석이라고 부릅니다. 


서윤이의 행동을 ABC 분석을 통해 살펴볼까요? 


어떤 상황: 마트에서 로봇을 사고 싶음 

A: 엄마가 안된다고 함

B: 마트에 드러누움 

C: 엄마가 로봇을 사줌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싶다면 선행사건(A)을 확인하면 됩니다. 서윤이는 엄마가 거절했기 때문에 드러누운 거군요. 행동이 무슨 기능을 가지는지 알고 싶다면 후속결과(C)를 확인하면 됩니다. 서윤이는 드러누움으로써 원하는 장난감을 얻었습니다. 

아무도 서윤이에게 드러누워 우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네가 드러누워서 울면 엄마가 네가 원하는 것을 사줄 거야’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서윤이의 드러눕는 행동은 후속결과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기능을 새로 가지게 됩니다. 다음에 또 마트 장난감 코너에 방문한다면 서윤이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눕겠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아이가 어디서 배웠는지 이제 아시겠나요?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의 자신의 행동과 그에 따른 반응을 통해 배웁니다.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것이 한 번의 행동입니다. ‘그래도 두 번은 안 사줄 거라고 버텼으니 다음에는 덜 울지 않을까요?’ 아니요, 아이는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 ‘내가 울었더니 로봇을 샀다’를 기억하게 됩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두 돌이 지난 서준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데요, ABC 분석을 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어떤 상황: 잘 시간 

A: 엄마가 잘 시간이라고 말함

B: 우유를 달라고 함 

C: 엄마가 우유를 주고, 우유를 다 마신 다음에 잠 


이미 두 돌이 지난 서준이는 자기 전에 우유를 마셔야 할 필요가 없는데요, 서준이는 왜 우유를 달라고 했을까요? 엄마가 자야 한다고 하니 싫었나 봅니다. 서준이가 우유를 달라고 하는 행동은 어떤 기능을 할까요? 지금 당장 침대에 누워야 할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네요. 방금 서준이는 잠자리에 들지 않기 위해 우유를 달라고 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행동에 대한 결과에 따라 이 행동을 다음에 또 하는 게 좋을지, 안 하는 게 좋을지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행동을 학습합니다. 우리는 ABC 분석을 통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행동이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지, 다시 말해, 행동의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행동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예: 로봇 사기)과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하는 것(예: 잠자리에 들지 않기) 외에도 관심 끌기(예: 부모가 쳐다보게 하기), 감각 자극 얻기(예: 빙글빙글 제자리 돌기를 통해 감각 자극 경험하기), 신체적 기능(예: 아픈 것의 표현)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집니다. 


ABC 분석은 아이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는 첫걸음이자 적절한 행동을 가르치는 시작점이 됩니다. 오늘 우리 아이의 행동을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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