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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 Feb 04. 2021

영혼을 이야기하는 영화

삶을 살아갈 스파크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Soul> by Pixar

디즈니가 특별한 주인공들로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내는 동화의 귀재들이라면, 픽사는 클라이막스 대신에 우리의 진짜 삶으로 가지고 갈 아주 작은 불꽃을 선물해주는 안티 클라이막스의 귀재들이다.


픽사는 옛날부터 물고기(니모), 장난감(토이스토리), 괴물(몬스터), 심지어는 자동차(카)처럼 마음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마음을 가진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으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한 쪽 지느러미가 유난히 작게 태어난 니모, 대량 생산된 장난감, 아이들을 놀래켜야 하지만 너무나 소심한 몬스터...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에, 대단한 것을 이루기 보다는 그저 무리 속에서 정상이 되는 것이 목표거나 본인이 사랑하는 것을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픽사의 주인공들은 고군분투를 벌여야 한다. (겨울왕국처럼 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같은 대단한 목적은 없다.) 그 모습들은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발버둥치는 아주 보통의 존재들인 우리들과 참 많이 닮았다.


이런 픽사가 얼마 전부터 아예 사람의 마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보니 문화와 종교 갈등을 피해야 하는 애니메이션 기업이 이런 행보를 보인다는 게 얼마나 대담한 결정을 한 건지 알 것도 같다. 인사이드 아웃(2015)은 샌프란 시스코에 사는 라일리를 통해 살아가며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코코(2017)는 멕시코의 '죽은자의 날'을 가져와 가족과 삶,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 죽음이라는 소재는 종교를 너무나 깊이 관여하기 때문에... 특별한 문화권 소재에 한정하지 않으면 안 됐던 모양이다.)


소울은 코코보다는 인사이드 아웃과 맥락을 함께하는 영화다. 픽사가 그린 한 사람의 마음 속 세상과 전생은 참 많이 닮아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삶과 죽음과 픽사의 대단한 창작열정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너무나 그리웠던 빙봉의 흔적을 발견한 게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

(좌) <소울>에 등장하는 영혼 구조선, (우)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라일리의 어릴 적 친구, 빙봉

빙봉은 라일리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조이(기쁨이)를 살리기 위해 검게 변한 기억 속으로 본인을 희생하고 투명하게 사라져 버린다. 빙봉의 자취는 이번 영화 <소울>에서 영혼 구조선(이 배의 진짜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이지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영화 사이 가장 큰 연결고리가 아닐까 싶다. 영혼들이 해메는 검은 모래 바다 속, 반투명한 핑크색 배는 무지개색 깃발을 달고 영혼들을 구조하러 다니는데, 뱃머리와 무지개색 깃발, 반투명한 핑크색의 배를 보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빙봉이다!


라일리의 세계 속에서 기억 너머로 잊혀져 버린 빙봉이지만, 길을 잃은 영혼들을 구조하는 구원의 존재로 다시 나타난 그의 모습이 왜 이렇게 반가웠을까. 픽사는 아마 우리 한 명 한 명의 미시적인 내적 세계는 또 어딘가에서 만나 거시적인 세계를 이루고, 결국에는 초월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사이드 아웃이 한 명 한명의 세계를 외딴 세계나 섬처럼 표현했지만, 사실은 <소울>에서 연결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픽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한 때는 행복했지만 잊혀져버린 아련한 기억들도 영혼의 세계 어딘가에서 바다를 이루어 넘실거리고 있다는 그 상상만으로도 울컥해버리게 되는 건 왜일까.


결국 “Spark”,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점화의 의미였다. 얼마만큼의 연료를 준비해야 하는지, 나는 무엇에 나의 삶을 쏟아부어야 할 지 이 순간 나는 너무 부족해 보이고 겁이 나더라도 일단 삶의 불꽃은 준비된 자에게 옮겨붙는다. 불꽃을 얻어 삶을 시작해 태어났다면, 죽는 순간까지 타오르는 것이 삶이다.


픽사는 2월 3일에 창립되었다. (심지어 내 생일이다. 이게 이렇게 감사하고 영광일 수가 없다.) 22번 영혼은, 2월 3일 태어나게 되는 나였을지도 모른다. 픽사 이야기의 마법은 이런 것 같다. 결국 22번 영혼이 무엇으로 태어났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 지는 순전히 우리에게 맡겨진다. 그가 바로 우리일지도...?라고 상상하게 한다.

“당신의 삶은 수천년간 기다려 온 불꽃을 받아 시작되었어요, 그러니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요.”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픽사는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빛과 바람,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바라봤을 때 절로 나오는 큰 한숨, 떨어지는 낙엽을 조금 더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삶인데, 아름다운 뒷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하고 수줍게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 개인적으로는 디즈니보다는 픽사의 이 사랑스러운 화법을 사랑한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생일선물보다도 따스한 이야기를 영화로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오늘은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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