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훔친 것

by 김주영

내가 처음으로 훔친 것은 책이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동네 헌책방에서였다.

무슨 책을 훔쳤는지, 왜 훔쳤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갖고자 하는 욕구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던 것 같다. 게다가 그때 그 헌책방은 군데군데 책더미가 내 키 높이 이상으로 쌓여있어, 누가 책을 집어 가도 모를 만큼 책의 탑이 시야를 가렸다. 훔친다는 행위를 결행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옷 속 품 안으로 책을 감출 때 심장이 콩닥콩닥 방망이질 쳤던 기억이 뚜렷하다. 책을 품고 헌책방을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뛰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뭔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긴장감과 성취감 사이에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듯했다.


도둑질을 한 번 성공하고 나니, 그 뒤로도 문구점이나 서점 등에서 물건을 훔치려는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나 욕구만 있었을 뿐, 주저하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한두 번 동네 아이들과 수박 서리를 하며 충동을 대신 해소했다. 몇몇 아이들이 수박을 한 통씩 들고 밭둑을 가로지르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시절 수박 서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쩌면 놀이에 가까웠다.


갖고 싶은 장난감과 먹고 싶은 군것질이 늘어나자, 나는 어머니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안방 화장대 위에 지갑을 놓고 잠깐 집을 비웠다. 지갑이 내 눈앞에 빤히 보였고 나를 유혹했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로봇 대사전>을 살 수 있다. 크라운 밀크캐러멜을 잔뜩 먹을 수 있다. 이런 욕망이 나를 움직였다. 어머니의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빼냈다. 그 뒤로 일이 주 간격으로 어머니의 지갑에 손을 댔다. 점점 대범해져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에서 서너 장으로, 급기야 천 원짜리가 만 원짜리로 자릿수가 올라갔다.


어린 나는 그 덕에 조금은 풍족해졌다. 반면 지갑에서 빼낸 돈의 액수가 늘자, 어머니의 의심도 커졌다. 어머니가 지갑을 열며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 등 뒤에서 그 모습을 조마조마 지켜봤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이러다 어머니에게 들킬 것 같아, 그 뒤로 지갑에 손을 대는 걸 그만뒀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나의 도둑질을 아마 눈치채고 있었을 거다. 내 바지 호주머니에서 먹다 남은 밀크캐러멜이 발견되고, <보물섬> 같은 만화잡지가 한 권, 두 권 늘어나는 걸 보며, 어머니는 도둑질을 내 용돈과 퉁쳤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언가를 훔쳤던 일은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만큼 도덕이라는 규범은 내면을 파고드는 힘이 강하다. 내 마음에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있는 기억들은 내 몸이 사라질 때까지 존재할까? 아니면 업(業)으로 쌓여 내세에 벌점으로 환산될까? 혹시 현세에 수행을 열심히 하면 소멸이 될까? 이도 저도 아니면 뇌의 해마가 노쇠해져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