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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Apr 20. 2019

'밥', 사랑의 다른 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할머니는 조제를 집 안에 숨기려고 한다. 그녀를 태운 유모차는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에만 아주 천천히 굴러간다.

숨어서, 그렇게 동굴 같은 집 안에서만 숨을 쉬는 조제는 사람들의 흔적이 쌓인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세상과 소통한다. 바깥과 단절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집은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이다. 따뜻한 밥이 있고, 따뜻한 고타츠가 있고, 그녀 나름대로의 따뜻한 서재가 있는.

낮고 아늑한 조제의 집과 침대가 있는 츠네오의 아파트는 대비를 이룬다. 츠네오는 인스턴트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마작 게임방 아르바이트, 엔조이에 불과한 여자와의 관계. 대충 만든 스파게티를 혼자 먹고, 엄마가 보내준 식재료는 잘 쓰지도 않는다. 그런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조제가 만들어준 밥을 먹고 처음으로 따뜻한 공간에 스며든다. 그 따뜻한 온기의 밥과 집.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 마주 앉아 먹는 밥. 이것은 곧 사랑이 된다. 조제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가 되고, 그 안에서 츠네오는 ‘무언가’의 부재를 해소한다.

  이처럼 ‘먹는다’는 것은 사랑의 다른 말이다.

츠네오는 식재료를 조제에게 가져다준다. 오해로 틀어진 두 사람의 관계를 풀고자 츠네오는 문어빵을 사 온다. 두 사람의 여행에 조제는 삶은 계란, 전병, 귤, 녹차를 챙겨 온다. 같이 먹는 행위 자체가 사랑의 표현이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조제는 홀로 남는다. 이때 그녀는 매우 외로워 보인다. 같이 있어달라고 말을 하지 못할 만큼 자존심이 센 조제는 결국 무너지며 츠네오에게 가지 말라고 말한다. 조제가 요리할 수 있도록 장을 봐주던 할머니의 자리는 그가 채우게 되었다. 함께 살게 되면서 조제의 헌책들은 버려진다. 츠네오의 짐이 들어오고, 침대가 생겼다. 세상과의 통로는 책과 할머니에서, 츠네오와 이웃집 아이들로 바뀌었다.


  그러나 츠네오가 그녀를 조제라고 부른 순간부터 조제는, 정말로 조제가 되었다. 사강의 소설에서처럼 언젠가 그도, 그녀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고 또다시 고독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녀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랑의 시작과 끝을 말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며 처음 보러 간 것은 호랑이다. 사랑의 끝을 알리는 여행의 목적지는 물고기가 있는 바다였다. 조제는 그녀가 빛도 소리도 없는 바닷속에서 헤엄쳐 나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별로 외롭지 않았고, 그런대로 나쁘지도 않았다고. 츠네오를 만나기 이전의 삶이 그러했다. 집, 옷장 속, 헌 책들. 그 작고도 고독한 공간은 조제의 외로움이 머무른 곳이다. 조제는 그 공간에 츠네오를 머물게 하고 밥을 만들어주며 사랑을 주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외로움과 부재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영원한 함께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츠네오는 조제와 담담한 이별을 하고 길을 가다 점심 메뉴를 이야기하는 타나에의 말에 울음이 터져버린다. 이제는 조제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없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 밀어주지 않아도 될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 먹을 적은 양의 생선을 굽는다. 외로움이 원래 그녀의 것임을 받아들인 후, 조제는 혼자 장을 보고,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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