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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리 Jan 02. 2024

쪼꼬가 떠난지 이틀 째

엄마의 끝나지 않을 숙제

쪼꼬가 떠난지.. 이틀째.


첫날은.. 아침에 일어났을때 평소랑 너무나 똑같아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는데 ‘쪼꼬야-‘라고 한번 불러보았고 평소 같으면 챡챡챡챡 발톱이 바닥에 부딪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커튼 아래로 얼굴을 빼꼼 보였을텐데 당연하게도 텅 빈 집에 정적만 흘렀고 나는 이름을 부르며 엉엉 울었다. 아 이런 마음을 어떻게 떨칠까. 어떻게 가슴에묻고 살아갈까.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언젠가 괜찮아지긴 할까.


-


내가 주 보호자였다면 내가 가장 힘들고 말 일이다. 생각보다 나는 마음을 잘 추스렸을거야. 정말 이보다 더.. 나은 이별은 없었을테니. 내가 힘든건 온 마음이 미어지는 엄마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삶의 이유였던 쪼꼬. 말도 안듣고 상처만 주는 자식새끼들보다 훨씬 훨씬 사랑만 한 우리들 중 가장 사랑받았던 강아지. 엄마의 인생이었던 쪼꼬. 보호자는 그 아이의 세상이라고들 표현하는데 옆에서 지켜본 내가 봤을 때는 엄마의 세상이 쪼꼬였다. 서로가 서로의 세상. 사소한 하나하나가 사방에 지천에 깔려있는데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겠어..


엄마는 아이같은 사람. 슬픔을 다른 것으로 승화시키거나 마음을 추스리는 일 같은게 서툰 사람. 마음을 마음대로 표현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도 하는 사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자주, 엄마가 보고 싶다며 아이 같이 우는 사람. 아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아이인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걸까. 버겁기도 한 사람.


엄마는 얼마나 지나야 이 슬픔이 무뎌질까. 5년 10년이 지나도 힘들다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겁이 난다.


사랑을 쏟을만한 다른 것을 찾게 될까. 엄마의 퍼주는 사랑은 왜 그렇게 크고 많을까. 그만큼 사랑받고 싶다는 뜻이기도 한게 아닐까. 이런 하염없는 사랑을 기꺼이 행복하게 받은 건 쪼꼬 뿐이었는데.


-


쪼꼬가 가득한 그 집에 잠깐 있었던 나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어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거 같아서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벌써 저녁만 함께 했는데도 힘들지만, 그래도 혼자 이겨내는 걸 상상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할까? 아님 안도할까.


쪼꼬의 옷을 두른 유골함을 가지고 이제야 쪼꼬 같다며 엎드려 펑펑 우는 이 어른을 어찌해야 할까. 쪼꼬를 닮은 인형이라도 하나 사야할거 같다고 할 때 나는 손사레를 쳐야할까.


사람마다 애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나는 그냥 지금은 엄마가 하염없이 슬퍼하는 마음을 퍼내고 퍼내고 엄마 표현대로, 쪼꼬가 엄마를 밀어내는 날이 오면 그 때 엄마도 비로소 안녕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른 시일내에 오진 않겠지. 인간이 망각이 동물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쪼꼬와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칼날이 되어 가슴에 꽂힌다. 좋은 기억들만 남는 날이 빨리.. 하루 빨리 와서 지독히 사랑한 얼룩만 남았으면 좋겠다.


괴롭고 많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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