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좋아 왔는데 브런치라는 허들이 있네
매일 개인적인 내용으로 날 것의 감정을 쏟아붓는 일기장과는 뭔가 다르다.
뭐지? 뭐가 다를까?
브런치에서는 책도 만들어지고 자타공인 작가가 되고 내 글과 책으로 마케팅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러니까 글을 쓰는 사람이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이뤄주는 마법의 장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걸까?
나는 아직 흙바닥에서 뒹굴고 콧물이 나오면 옷으로 쓰윽 닦고 얼굴이나 옷에 얼룩덜룩한 재가 묻은 상태로 뛰어놀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일기장에서 뛰어놀던 햇병아리인데 여느 만화나 소설에서처럼 얼떨결에 공작부인들의 티타임 장소에 들어와 버리게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이곳의 룰을 따라(심지어 실제 룰도 아닌데) 단정한 옷을 입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천방지축으로 뛰던 발걸음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기품 있게 걸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마음은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든다.
뭔가 에세이스러운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브런치스러운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아서 서랍에만 묵혀진 글감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 안의 자기 검열이 '여기선 아니야'하고 보류라고 적힌 도장을 여기저기 쾅쾅 찍는다. 내가 꺼내지 않으면 영원히 서랍 안에 갇혀버릴 나의 생각들.
내가 하는 말도 생각도 잘 믿지 못하는 나는 나의 글을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 이틀 일주일 뒤에도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글을 발행한다. '네가 말하고자 한 게 이게 맞아?'라고 숱한 가지 치기가 있고 나서야 세상에 나오지만 그런 글이 뭐 대단히 엄청나게 갈고 닦여져서 나오느냐 그런 것도 아니라는 점이 웃픈 포인트라는 거다.
이슬아 작가의 2년 전 작업 브이로그를 보게 되었다. 구독료를 받아 보내는 글임에도 마감 2, 3시간 만에 글을 휘리릭 적어서 마감에 맞춰 탁 보내는 모습에서 갈고 닦인 내공을 보았다.(물론 그녀도 글이 적히기 전까지 온몸으로 괴로워하고 미루고 미루다 시작한다. 나는 이 부분도 어쩐지 굉장히 위로가 되었다..)
아, 글이란 게 하루 만에 그냥 쓸 수도 있는 건데. 그냥 내가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인데.
이 글은 블로그용, 이 글은 브런치용.. 하면서 플랫폼에 맞춰 글을 쓰는 게 아니라(물론 이 점도 중요하지만)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곳에서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그냥 쓰면 되는 것이었다. '이 글이 브런치스러운가?' 하며 또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내 안의 글쓴이는 비록 집에서는 코를 후비적거리는 아이일지라도 공공장소에 가면 사회적인 예의를 따르고 인사를 공손히 나누는 어른의 자아 역시 있으니 그 정도의 사회성은 발휘해서 적는 글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잘 못 쓴 글도 홍보한다는 이슬아 작가. 잘 못 쓴 글은 창피하지만 그것까지도 경험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어 나는 용기를 내본다. 브런치스러운 글을 쓰고 있니 마니 하는 것은 이 플랫폼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물론 나는 이 글도 여러 번 퇴고를 거쳐 발행하고, 발행하고 나서도 퇴고를 거칠 것 같다. 종이에 발행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담대한지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