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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nudge 이넛지 Apr 26. 2023

여직원이라는 꼬리표

외부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갖기

내가 사원일 때 함께 일했던 팀장님은 이제 임원을 바라보는 부서장이 되었다. 과거 함께 일한 전우애가 있어서인지 우리는 그때와 다르지 않다. 각자 일하는 분야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을 털어놓는다.


2년전 경쟁사에서 어렵게 스카웃 한 직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 부장으로, 트레이딩을 잘 한다며 내게 소개해주었다. 너가 좀 어렸을 때 이 일을 했다면 어땠겠냐 아쉬워하시며, 공들인 친구인데 잘 한다고 칭찬을 하면서.


그런데 어제는 그 직원이 남편 해외 지사 발령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내게 전했다. 긴 호흡으로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며 내뱉는 말씀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래서 여직원은 함께 일하기 힘들어"


나 또한 직원이기도 여자이기도 해서, 그 마음이 무언지 이해되었다. 그가 힘들게 스카웃한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정말 아쉬워했다. 일 잘하는 직원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그러나 곧 이어진 한마디.

"그런데말야, 이런 경험 한두번 하면 좀 그래."




회사에서 나는 그들이 말하는 여직원일까. 어쩌면 더욱 남성처럼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호탕하게 웃고, 술도 잘 마시고, 서슴없이 대하고. 물론 이게 진짜 남직원은 아닐테지만. 상사의 지시에 잘 응하고, 눈치 잘 살피고, 부담없이 일 시킬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 아니겠나.


지난주 업계 사람들과 저녁을 함께한 적이 있다. 컨설팅사에서 이쪽 업계로 이직한 젊은, 짧게 이야기했지만 당차보이는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 업계에 멋진 여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냥 웃었다. 희망에 가득찬, 그리고 또렷한 눈빛을 지닌 그녀를 앞에 두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말이죠. 업계에서 주름잡는 여자들은, 같은 여자가 봐도 대단하신 분들, 여장부쯤 되는 분들이에요. 워커홀릭에 영업, 정치까지 완벽하신 분들. 가정사는 모르겠고, 워라밸은 어느집 이야기인가 싶고.'


아마 이 업계뿐만이 아닐거다. 그녀가 기대하는 멋진 여자들이란 그런 분들을 이야기하는걸까.




어쨌든 나 역시 여직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일한지 십여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이래서 여직원은 힘들어"라는 말을 들으면 여전히 씁쓸하다. 모두가 같은 직원이 아니듯, 여직원도 모두 같지 않은데, 마치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묶이는게 우습기도 하고.


맞벌이가 증가추세라는데, 여직원이라는 꼬리표는 남직원과 같은 비중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왜 드는건지. 집안의 가장은 여전히 남성인가. 육아는 여성의 몫인가. 여직원은 무언가.


지난달 타부서 누군가 내게 물었다.

"내년에 첫째 학교 들어가면 너 육아휴직 쓸거야?"

"아니. 난 하고싶은게 많은데, 왜?"

나의 육아휴직 여부가 궁금한 것은 내 자리의 공백 때문일까. 여직원이라 그런걸까.


일하면서 평생 달고 있을 여직원이라는 꼬리표.

오늘도 공부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이것 또한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늘 타자의 시선을 통과해서 자신을 다시 만난다. 다른 이의 행동을 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 매몰되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더는 발전하거나 성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게 부족한 것을 채워서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외부의 시선에 너무 휘둘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행동할 뿐 정작 자신의 욕망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다.
-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더퀘스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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