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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Feb 19. 2024

고3 수험생 엄마의 초심

너는 공부를 하거라 어미는 염불을 외겠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중간이라는데 고3에게 중간은 세상에서 제일 애매하다.


상향지원하자니 떨어질 것 같고 , 하향지원하자니 왠지 실패한 기분이고 

욕심내자니 건방지고 내려놓자니 왠지 서럽다


울 아들은 중간이다.

잘하면 될 것도 같은데 여차하면 안 될 것 같은 중간이다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노력의 기준이 나와 그 녀석과의 차이가 너무 크다.


처음 고3이 되었구나... 했을 때 다짐했던 건... 

작년과 다를 바 없다. 늘 하던 공부를 그저 할 뿐이다. 부담 주지 말자였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다고 인생 다 산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 간다고 인생이 그때부터 아우토반도 아닌데 큰 의미 두지 말자. 

그저 최선을 다하자...라고 마음먹었었다


유난 떨지 말자.


아놔.. 근데 나도 모르게 그 녀석 방에서 들리는 해맑은 "막아! 막으라고"를 외치는 아들놈에게 사자후를 날리고 싶어 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잘 참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멀지 않은 때에 폭발할지도 모른다...

이건 휴화산이다.. 가끔 연기가 올라와서 나 지금 드글거리고 있다고 신호 보내고 있는 휴화산.



아들을 데리고 한의원에 갔다


선생님은 대번에 아들놈의 손톱과 안색을 보시더니 

"넌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냐? 많이 예민하고 긴장하네.... "라고 하셨다.


아... 이런....

내색 안 했는데 이 녀석도 긴장하고 있었구나

이 녀석도 고민이 많았구나

놀아도 노는 게 아니었던 거구나...


녀석의 병명은 "수능 끝나면 나을 병"이었다.


머리부터 꼼꼼하게 봐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녀석의 오장육부가 다 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료를 마치고 시장에서 꽈배기를 사서 우적우적 씹어먹으면서 


"엄마도 조심한다고 하는 건데도 영 부담이 되나 보다... 미안해서 어쩌냐?"라고 했더니

"엄마가 부담 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부담을 느끼는 거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애매하단걸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래서 부담되는 거지 뭐..

욕심은 내고 싶은데 성적은 애매하고 차라리 공부를 아예 못하면 아무 데라도 들어가면 다행이라고 맘 놓을 텐데 그런 성적은 또 아니고.. 애매하니까 생각이 많아지나 봐.."


애미나 너나 생각이 다 비슷했구나..


나보다 더 아들놈 인생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아들놈 지 자신일 건대...




나는 갑진년 들어 관음기도를 시작했다.


우리 집은 모태무교이고 전) 시부모님은 권사님이셨고, 나의 첫사랑은 교회 오빠였지만 난 이번 아들놈의 고3기간을 관세음보살님께 맡기기로 했다.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정갈하게 씻고 진언과 관세음보살 정근을 3천 번씩 외친다.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날 때마다 아들놈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관세음보살님을 부른다.


관세음보살님이 "야 작작 불러... 왜왜왜 뭣 때문에 그러는데?"라고 문 열고 나오실 때까지 문 앞에서 계속 부를 예정이다.


아들은 아들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하겠다.

이 또한 결국 내 맘 편하자고 하는 일이라서 아들놈께 굳이 말하진 않았다. 

이래도 뭔가 성적에 진전이 없다면 아마도 관세음보살님을 협박하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전에 이미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귀와 천 개의 마음을 들으시는 분이시니 다 알고 계시겠지만....

(듣고 있나요???? 관세음보살님 듣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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