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2
운전 중이었다. 얼마 전, 아내가 예전에 살던 지역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났다. 이에 이전에 살던 공간과 사람, 그리고 아이들 친구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대화중 아이들에 물었다. "너네 누구누구랑 친했는데 기억이 나니?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발레도, 키리키리(놀이 영어 수업)도 함께 했었잖아." 아이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여행 기억까지 이야기가 진행됐다. "너네 비행기 타고 어디, 어디 갔던 거는 기억이 나?"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말한다. "아니, 난 전혀 기억 안 나." 내가 말한다. "이거 봐 이거 봐. 어릴 때 여행 다녀봤자 전혀 필요가 없다니까. 하나도 기억을 못 하잖아."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여행을 기억하려고 가나. 재미있으려고 가는 거지
지난 주말, 가족들과 강릉에 위치한 '강문 해변'을 다녀왔다. 많은 청춘들이 있었고, 여기저기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 찍는데 보통 공들이는 게 아니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살짝 고개를 돌려 얼굴 옆선을 보여주는 설정 샷을 찍는데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찍는다. 바다 위에 위치한 바위 위에 올라 한참 사진을 찍는다. 반면에 아이들은 사진 찍기에 전혀 관심이 없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벗고 바다에 뛰어든다. 모래가 몸에 달라붙든 말든 개의치 않고 모래 위에 드러눕거나 모래성, 두꺼비 집 등을 만든다. 사진을 남기고 싶어 엄마 아빠가 사진 찍자고 애걸복걸해야 그때서야 잠깐 포즈를 취해준다. 그리고 다시 원래 하던 놀이로 돌아간다.
어른과 아이가 여행을 대하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어른은 사진을 통해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한다. 여기에 한 스푼 더해, SNS에 공유함으로써 약간의 과시 목적이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그 순간을 즐긴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다. 해외 어디를 갔고, 바닷가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바다에 갔는데, 비행기를 탔는데 재미있었으면 그만이다. 그걸 자랑할 생각도 없다.
이전에 김영하 작가님이 《알쓸인잡》에 출연해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요. 어차피 다 까먹을 건데 왜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가냐고요. 하지만 좋은 감정은 남아요. 부모와 함께 바다를 가고, 바다에 대한 좋은 감정은 남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억은 잊어버려도 나중에 바다에 가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듯이 말이죠..
아이들은 어른들과 여행의 목적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과거나 미래, 혹은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그저 현재를 재미있게 보낼 뿐이다. 순간의 즐거운 감정에 충실하다. 행복하려면 아이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해변가에서 다른 형태로 즐기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의 여행에 대한 고견을 들으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은 기억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즐기고, 힐링하고, 치유하고자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