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가 38도의 고열이 났다. 하지만 약 먹기를 강하게 거부했다. 차라리 아픈 게 낫다고, 약은 절대 먹기 싫다고 했다. 조그마한 약 튜브병에 담긴 20ml를 먹는데 30분째 엄마와 대치중인 상태였다. 지켜보는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한 입에 쭉 빨아먹으면 몇 초면 끝날 일을, 그리고 너 아픈 거 낫게 해 준다고 먹는 약인데 왜 이걸 엄마가 어르고 달래며 사정해야 하는 거야!!! 그냥 먹지 마. 계속 아파 그냥!!"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그런 말 할 거면 방에서 나가라고 말이다.
이번엔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딸과의 이야기다. (이 정도면 프로 싸움러인듯하다.) 잠잘 시간이 됐기에 불을 껐다. 하지만 딸이 여전히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아들에게 쫓겨나 아들은 엄마와, 딸은 아빠와 잠을 잤다.) 핸드폰은 그만하고, 이제 그만 자자고 말했다. 딸은 조금만 더 보고 스스로 끄겠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고, 그 모습이 조금은 꼴 보기 싫었는지 기다리지 못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 앞으로 학교 갈 때도 깨워주지 않을 테니 스스로 일어나서 옷 입고 알아서 해. 상관하지 않을 테니..."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아이가 급하게 핸드폰을 끄고, 울먹이며 아빠에게 다가온다. "진짜 2분만 있다 끌려고 했는데..."
나는 후배, 아이들과 대화를 통한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알량한 권력(선배와 부모라는 지위)에 의지해 힘으로 찍어 누르려했을 뿐이다. 내 말이 옳으니, 너희들은 그저 따르면 된다고 말이다. 전형적인 꼰대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은 있어 보인다. 후배에게는 화를 내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는 다음날 아침 출근하기 전 잘못을 사과했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일방적인 명령을 하거나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상대방 의견보단 내 주장을, 경청보다는 내가 말을 더 많이 하고 있음을 말이다. 예일대학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는 소통에 성공하려면 내용보다 방식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을 말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냐'가 중요하는 의미다. 아무리 옳은 내용이더라도 말하는 태도가 불편하면 그 말은 상대방에게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리고 나에 대해 부정적 감정만 키울 뿐이다. 설령 내 아이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