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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다람쥐 Aug 15. 2023

'함께 사는 사이'가 아닌 '함께 하는 사이'


링컨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승리 후 말했습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사실상 노예 해방을 선언한 셈입니다.


150여 년이 흐른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해방'을 외치고 있습니다. 물론 해방의 대상이 링컨이 외쳤던 흑인 노예는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이죠.      

'나만의,
나만에 의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


일터에서, 혹은 육아를 할 때면 우리는 나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삽니다. 회사에서 아무리 주인의식을 가지라 외쳐도 결국 회사 주인은 창업자와 그의 가족들이며, 내 DNA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일지라도 결코 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타인을 위한,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수동적 삶에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공부하려 했는데 부모님이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면 내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생각에 공부할 마음이 싹 가시는 것처럼 말이죠. 비단 사춘기 때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4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청소를 하려고 하는 순간에, 아내가 '청소 좀 해'라고 말하면 청개구리 정신이 발휘됩니다.      


수동적인 삶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무력감이라는 감정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이에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감정은 당연하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을 더욱 갈망하게 됩니다. 최근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뜻하는 '미타임'이 트렌드인 이유는 우리의 삶이 내 의지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들, 타인에 결정에 의해 따라야만 하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기에 그에 대한 대응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찌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나 말고, 우리를 위한 시간은? 

'미타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결혼을 하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루 중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있으신가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세요. 혹시 일터에서 혹은 육아로부터 지친 나를 위한 보상으로 저녁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만을 가지려 애쓰진 않으신가요? 퇴근 이후 지인들과 술자리, 일찍 귀가하면 방에 들어가 스마트폰만 보기 등 말이죠. 주말에도 배우자와 함께 하기보다는 골프 등 취미생활 즐기기, 성장한다는 빌미로 자기 계발 시간 갖기 등, 우리가 아닌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고만 하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회사 동료들을 포함한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저와 별반 다르진 않아 보입니다. 저는 소위 '자기 계발 강박증'이 있었습니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물론 지금도 조금은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면 자책감과 자괴감이 상당했습니다. (막상 시간이 있어도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이러다 보니 내 목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우선이었습니다. 퇴근 이후,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이제부터 내 삶이 시작이다'라는 마음으로 회사에 남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카페로 출근을 했고요, 캠핑이나 여행을 가서도 노트북을 켰습니다. 제 기준에 책을 보지 않거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같은 공간에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시간을 보내는, 아내와 저는 '함께 하는 사이'가 아닌, 그저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사는 사이'에 불과했었습니다.    


배우 차승원 님의 말


최근 배우 차승원 님이 나영석 PD님의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에 출연했습니다. 그는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는데요.


나는 소위 비혼주의자다.
만약 결혼을 지금까지 안 했으면
비혼도 괜찮은 것 같다.
자기 삶이 있지 않나.

그런데 결혼을 한다면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안 질 거면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책임져야 할 내 가족이 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무조건이다.
그건 불변이다. 


비혼도 괜찮고 자기 삶을 사는 것, 개인적으로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절대 결혼생활이 좋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도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지만, 가끔 생각합니다. '아, 결혼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하고 말이죠. 하지만 '결혼을 한다면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의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기서 책임은 가족들이 먹고 잘 수 있는 생계만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녀, 친구, 그리고 직원들의 신체에 영양분을 주고 있지만 그들의 자부심에 영양분을 주는 데는 얼마나 인색한가? 우리는 그들에게 불고기와 감자를 주어 에너지를 축적하게 만들지만, 샛별의 합창처럼 몇 년을 두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노래하게 될 친절한 감사의 말을 하는 데는 몹시 인색하다.

-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씨앗을 뿌리는 사람 -

서로 작은 이야기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절친한 파트너가 되는 것, 서로의 마음과 자부심에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계를 갖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아내이자 남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말이죠.     


좋은 아빠, 좋은 부모, 그리고 좋은 남편

저는 김민식 PD님을 참 좋아합니다. 그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에서 '더 행복한 아빠가 더 좋은 아빠라고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한때는 이 문장을 제 멋대로 해석해 악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아빠가 행복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니까"라고 말하며 제 시간만을 추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더 행복한 아빠는 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결코 좋은 아빠와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의 행복 추구, 이를 위한 나만의 시간 갖기가 결코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듯, 결혼을 하면 나와 가족의 삶의 균형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행복,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소중한 만큼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결혼 10년 차로써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생각합니다. 결혼하지 않는 삶이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삶도 매체나 SNS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많은 안습니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하시고 계시다면, 그리고 이미 결혼을 했다면 상대방을 책임지고자 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인을 위한 삶을 조금은 희생하고, 우리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각오 말이죠.       


사람 사이에 그냥 편해지고 그냥 좋아지는 관계란 없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가 얼마큼 감수한 불편의 대가이다. 일방적인 한쪽의 돌봄으로 안락과 안전이 유지된다면 결코 좋은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 봄비와 수선화의 관계처럼 그것이 '그냥'이 되려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참음도 필요하고, 주고도 내색하지 않는 넉넉함도 필요하고, 고마움을 잊지 않은 마음 씀도 필요하다.

- 『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


관계에 있어 결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결혼도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룬 것이기 때문이죠.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조금씩 희생하고 양보합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건강한 결혼 생활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희생과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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