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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Mar 14. 2022

제갈량의 북벌 (4) - 읍참마속과 2차 북벌

마속의 처형과 진창성 공방전

읍참마속



1차 북벌의 실패



  가정에서의 패전과 달리 제갈량의 준비성은 놀라웠다. 농서-천수-안정 지방으로 넘어오는 길목이 될 가정 수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제갈량은 가정 수비를 위해 고상으로 하여금 가정의 남쪽의 열류성에 주둔하게 했다. 열류성에 고상이 있음으로 장합이 위수를 통해 상규로 넘어오는 루트를 방어함과 동시에 가정에서의 군대를 지원하게 했다. 다만 가정 패배 시점 즈음에 열류성의 고상의 군대도 곽회의 부대에게 패전해 사실상 북벌은 종료된다. (참고로, 열류성의 위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아 가정 남쪽 상규 부근에 있지 않았을까 추측되고 있다.)

  마속의 1차적인 목표는 시간 지연이었다. 마속도 조운도 모두 기만술이었다. 이를 위한 대비도 철저하게 했다. 그리고 마속이 분명 실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단단히 일러두었다.


  마속은 제갈량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했다.


  마속이 혹시나 실수할지도 모를 생각에 전장에서 오랜 시간 누볐던 왕평을 부장으로 붙여주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했다. 반드시 가정의 길목을 지켜 장합이 옹주 지방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일러두었다. 하지만 마속을 길목이 아닌 산 위에 진을 쳤다.


  마속은 왜 굳이 산에 진을 치는 악수를 두었을까?



  천재들은 간혹 가다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변칙적인 전술을 사용하곤 한다. 눈에 보이는 좋은 길을 놔두고 스스로 안 좋은 길을 택한다. 이런 점들은 때론 큰 실책을 가져오기도 한다. 천재들이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 이상한 곳에 매몰되어 정상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


  마속 역시 삼국지 최고의 전략가 제갈량이 인정한 천재였다. 그의 형 마량 역시 굉장히 머리가 비생했다.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마속 역시 비상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제갈량이 전쟁 때마다 그와 같이 전술을 논의할 정도였으니 분명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너무 많던 마속이 산 위에 오른 이유도 무언가 적이 예상하지 못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정상적인 카드를 버리고 뜬금없는 악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늘 그렇듯이 변칙적인 전술은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패전의 책임을 지게 된다. 한신의 배수진은 성공하여 현대까지의 찬사를 받고 있고, 마속의 가정 전투는 실패하여 현대까지도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마속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읍참마속



  가정에서 패배를 하며 제갈량의 1차 북벌도 사실상 종료된다. 가정에서 장합이 이기고 열류성에서 곽회가 이겼다. 이제 장합은 군대를 농서 방면에서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었다. 소수의 촉나라 병력은 위수 지방에서 넘어오는 위나라 군대를 막을 힘이 없었다. 제갈량은 손실이 더욱 커지기 전에 패배를 인정하고 한중으로 퇴각한다. 조운이 조진에게 패배하고 잔도를 불태운 것도 이 시점으로 추측된다. 제갈량이 수년간 준비했고, 완벽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인 그의 첫 번째 북벌은 허무하게 끝났다.


  패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마속은 도망갔다. 문책이 두려워 탈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껴 돌아왔는지 아니면 도주 중에 촉나라 병사들에게 발각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다시 촉나라 군영으로 돌아온다.

  마속은 곧바로 군법 회의에 회부된다. 제갈량은 왕평에게 가정에서의 자초지종을 듣고 마속의 실책에 대해 전부 알게 된다. 마속의 행동을 보고 화가 난 제갈량은 결국 죄를 물어 그를 참수한다. 제갈량은 평소 그를 신임했기에 그에게 참수형을 내리면서도 크게 울었다고 한다. 해당 일화가 퍼져 읍참마속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기게 되었다.


  1차 북벌의 실패로 제갈량은 옹주 지방에 대한 지배력을 완전히 잃었다. 본인들의 홈그라운드인 진령산맥 이남 지역으로 귀환했다. 또한, 가장 신임하던 마속을 죽이게 되어 가뜩이나 부족한 촉나라 인재 풀에 치명적인 손상이 왔다. 다만 마이너스만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촉에 투항한 천수군 장수 중 강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훗날 제갈량은 강유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후 그를 중히 쓴다. 제갈량 사후 강유는 촉나라 대장군에 오른다.


  이제 촉나라는 자신들에게 가장 좋을 수 있는 카드를 모두 공개했다. 장안과 진창만 잘 지키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위나라는 이제 전선을 옹주와 서량까지 펼쳐야 했다. 제갈량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히든카드를 공개해버리고 만 것이다. 위나라의 운용 가능 병력의 촉의 몇 배를 압도하는 상황이라 위나라 입장에선 큰 문제가 없었다. 반대로 약소국 위치의 촉나라와 제갈량은 이제 소수의 병력으로 더 넓어진 전선을 운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학소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2차 북벌 - 진창성 공방전



  228년 5월 위나라와 오나라의 석정 전투가 벌어진다. 위나라의 지휘관 조휴는 석정에서 계속 실책 하여 위기에 빠진다. 결국 위나라는 서부 전선에 할당된 병력마저 동쪽으로 돌리게 된다. 제갈량은 소식을 듣고 다시 군대를 몰고 두 번째 북벌을 감행하기로 한다.

  만반의 준비를 거쳤던 1차 북벌과는 달리 두 번째 북벌은 급하게 이루어졌다. 준비를 거치지 않고 위나라 병력이 비어 있는 틈을 타 재빠르게 공격해야 했기에 옹주나 서량 지방으로 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2차 북벌로 선택한 루트는 기곡을 통한 진창 공격이었다.


  진창성을 방어하고 있는 사람은 학소였다. 촉나라 성립 이전 진창은 평원 지대였다. 그러나 위 건국 이후 사령관 조진은 훗날 촉나라 군대가 기곡을 넘어올 것을 대비하여 진창 지역에 성을 세웠다. 그리고 명에 따라 성을 세운 사람이 위나라 장수 학소였다. 조진은 대략 8년 후의 미래를 대비하여 진창에 대한 방어를 강화한 셈이다.



  1차 북벌에서도 간략히 소개했듯이 진창은 위나라 입장에서 중요한 수비 요충지였다. 장안성이나 워낙 난공불락의 요새에 대도시라 큰 걱정이 없다. 서량의 마초조차 이곳을 피해 갈 정도였다. 촉나라 입장에서 자오곡을 넘어 장안에 올 수 있지만, 자오곡 자체가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기 어려운 데다가, 소수의 병력이 장안에 온다고 쳐도 그리 위협이 되지 못한다. 장안이 농성으로 단기간에 무너질 성도 아니고, 장안을 포위했을 경우 사방에서 오는 원군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위나라 입장에서 경계해야 되는 것은 장안이 완전히 포위되어 원군이 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라도 사방에서 고립되면 답이 없다. 가량 서량과 옹주 지방을 완전히 촉나라에게 뺏기고, 수도 낙양의 병력은 오나라를 막기 위해 상용, 양양, 완 부근 형주 병력을 동원된 상황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나라가 오히려 협공을 받게 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다. 제갈량의 1차 북벌이 바로 이 점을 노리기 위해 상용을 확보하려 한 것이고 옹주-농서 지방을 우선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제갈량이 옹주가 아닌 관중(장안 부근의 지역)으로 곧장 간다고 해보자. 한중에서 기곡을 넘어 관중으로 간다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성은 진창성이다. 당연히 위나라 중심부를 단번에 공략하는 방법이라, 낙양, 형주 및 옹주-서량에서 오는 군대에게 포위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옹주와 관중은 거대한 산맥과 위수가 가로막고 있어 대응 시간이 느리다. 그리고 1차 북벌에서 봤듯이 그런 상황에서 옹주의 병력이 위나라 편을 들어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심지어 뒤엔 촉나라와 친한 이민족인 강족이 있다. 수도 낙양의 병사를 부르자니 오나라의 병력이 또 걱정이다. 전쟁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촉나라에서 관중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기곡과 진창의 방어는 매우 중요하다. 기곡은 거리가 매우 짧고 대규모 병력을 운용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물론 이곳도 수많은 잔도로 이루어 있어 편안하게 군대를 운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자오곡이 대관령 국도라면 기곡은 영동고속도로 수준이다. 촉나라 입장에서는 기곡 루트에서 만날 수 있는 (오장원)-진창-미현-장안 경로는 마치 북벌의 정석과도 같았다.



  제갈량은 2차 북벌 당시 오나라의 선전에 호응하기 위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천수나 기산이 아닌 진창으로 향한다. 시간도 없었고 진창을 공격해본 적이 없으니 이곳의 방어에 대한 탐색전도 필요했다. 제갈량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창으로 향한다.

 


  위나라는 제갈량의 기습을 당했다. 진창성을 지키고 있던 학소에게 주어진 농성 병력은 단 1000명이었다. 조진은 소식을 듣고 곧바로 비요에게 명령하여 원군을 보냈다.



  학소의 부대는 수십 배의 제갈량의 대군에 맞서 놀라운 성과를 보인다. 제갈량은 충차와 운제를 동원해 진창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위나라 군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학소는 불화살을 쏘고 성안에 있는 무기들을 전부 동원하여 버텼다.

  위나라 황제 조예 역시 진창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원군을 파견한다. 사마의는 석정 전투에 투입되어서 이번에도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장합뿐이었다. 어린 황제 조예는 다급하게 장합을 찾으며 빨리 진창으로 향하라고 하지만 장합은 여유로웠다. 조예는 그 사이 진창이 무너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지만 베테랑 장합은 여유로웠다. 장합은 조예에게 학소가 분명 오랜 시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진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학소는 장합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제갈량의 대군을 상대로 무려 3주나 버텨냈다. 그사이 비요와 장합의 원군이 도착했다.


  제갈량은 진창의 공략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단 10일 치의 군량만 가져왔다. 비요와 장합의 원군이 오자 제갈량은 더이상 공략할 힘이 없음을 깨닫고 곧바로 퇴각한다. 학소의 놀라운 승리였다.

  장합은 퇴각하는 촉나라 군대를 추격하기 위해 왕쌍을 보낸다. 하지만 촉군을 추격하면 왕쌍은 오히려 촉의 매복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정사에서는 왕쌍에 대한 기록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이 부분을 각색하여 유성추를 사용하는 조진의 부장 왕쌍이 그를 출격시켰으나 위연의 매복에 걸려 사망하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그렇게 제갈량의 두 번째 북벌 역시 끝이 난다.





P.S.

최대한 정사 삼국지를 기반해 작성했으나 서기 200년대의 자료가 희박해 작가의 각색 혹은 '삼국지 연의'의 스토리가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당대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 자료가 희박하여 '코에이(KOEI)'사에서 개발한 '게임 삼국지' 시리즈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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