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한 다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평소라면 남편이 버릴 테지만 오늘은 내가 버릴 테니 놔두라고 말했다. 바로 저녁 산책을 할 심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아파트 분수대 광장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 바퀴 거리가 삼백여 미터 정도 되려나. 추운 날씨 때문인지 걷는 사람은 나 혼자다. 밤하늘에 빛나는 두 개의 별이 보인다. 예상과 달리 그다지 춥지 않아서 걷기에도 부담 없다. 발걸음 속도에 따라 들이마시고 내쉬는 규칙적인 호흡에 집중하면서 나를 보살피는 시간이다.
6일의 연휴 끝자락이 보이는 시간이다.
내일 하루 업무를 하고 나면 또다시 이틀의 주말 휴일이 있긴 하지만 아쉬움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연휴 첫날, 나를 위한 6일을 만들어 보자고 나름 부풀어 있었는데 욕실 청소 생각, 밑반찬 생각, 친정 방문 생각, 31일 근무 생각 등 불쑥불쑥 훅! 하고 들어오는 두서없는 생각들이 책 읽는 와중에도 드라이브하는 와중에도 떠올랐다. 언제쯤 초연해질까. 그나마 시어머니께 고마웠던 점은 금번 설에는 서울에 사는 딸 집으로 가서 일주일 보낼 예정이라고 하시기에 편도 두 시간 걸리는 시댁 방문은 면제되었다.
올해 내 나이는 오십이고, 직장 생활 29년 차에 접어들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두 살 3월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의 공백 없이 두 곳의 직장에서 경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첫 직장 입사가 확정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가난한 우리 집을 구제해 준 것만 같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빨리 내일이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어느 정도 가산이 회복될 즈음 지금의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결혼도 했다. 이곳에서 24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한해 한해 흐를수록 업무에 노련해지기보다는 내 능력치보다 버겁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사직서를 쓰겠다고 남편에게 실없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하고 그때마다 남편은 "알았어요." 하면서 별다른 액션 없이 묵묵하게 나를 지켜봐 주었다. 결국 그만 둘 자신이 없다는 것을 남편은 알고 있어서 알았다는 짧은 대답을 해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6일의 연휴 마지막이 아쉽다기보다는 그저 그 흘러감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내 마음의 평정을 더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오십의 나이라면, 29년 차 직장인이라면 마음속 변화와 표정이 표 나지 않고 그저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넉넉하고 초연한 마음 말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 호흡에 집중한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유연한 듯 단단한 나를 단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