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선택에서 계약까지
*이 글은 2016년 5월 20~30일에 걸쳐 작성된 글입니다.
5월 12일 일본에 온 후 벌써 열흘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눈여겨보고 있는 집의 거주 희망자 중 내가 1순위라는 얘길 듣긴 했지만 계약 조건(보증금, 보증회사 사용 여부, 보증료, 긴급 연락처, 보증인 등)이 이제야 정리가 되어 가서 빨라도 5월 26일경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처음엔 에어비앤비 숙박료 등이 걱정되었지만 얘길 좀 들어보니 집 찾기 > 심사 > 계약 등의 과정을 거쳐 실제 입주까지 정말 빨라야 5일, 보통 2~3주가 걸린다고 하니 이젠 뭐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초조하다. 입사일이 6월 1일인데 집 때문에 업무에 영향을 받고 싶진 않다.
일본에서 집을 임대하는 방법과 절차 등에 대해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임차인이 일본인이 아닌 경우 집주인이 집을 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음식 냄새 핑계를 대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집주인을 경험한 친구 얘기도 들었다. 일본어를 못 한다고 죄인이 되는 건 아닐 터인데... 물론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1. 입사 예정인 회사를 통해 부동산 회사를 소개 받음
내 경우 회사에서 외국인을 위해 마련한 집 고르기 및 임대 계약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몇 곳을 소개받았다.
2. 부동산 회사를 통해 집을 알아 봄 (대략 10곳 정도)
도쿄 사는 친구에게 집을 고를 때는 반드시 직접 가서 보고 골라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료 혹은 웹사이트에 실린 집의 구조나 설명만으로는 가장 가까운 역까지의 거리, 주변의 편의 시설, 창문의 방향, 방의 구조, 수납공간, 보안 시설 등 다양한 조건을 확인할 길이 없다. 게다가 웹 서핑만으로는 정보를 구할 수 없는 집도 있다.
사실 집을 얻으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는 얘길 듣긴 했으나 내가 둘러본 곳 중에서 마음에 딱 드는 집은 지금 살고 있는 맨션밖에 없었다. 사실 5월이면 집을 계약하긴 너무 늦은 시기이긴 하다. 일본인 동료에게 물어보니 집을 알아보려 한다면 연말이 되기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보통 연초에 타 지역으로 전배를 가거나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금만 늦으면 좋은 물건들이 싹 빠지기 때문이다.
내가 두 번째 부동산 회사를 고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회사의 규모가 크긴 했으나 직원이 보여준 집도 그렇고 그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을 선택하고 소개하는 센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입장에서 고민해 준다는 느낌이 부족했다. 특히 함께 몇 곳을 둘러보고 난 후 좀 더 고민하고 오겠다고 하니 오늘 본 집이 내일 계약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순간 다른 업체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업체에서 제대로 된 담당자를 만난 것은 좋았으니 역시 남아있는 대부분의 집들이 북향, 1층, 고속도로 바로 앞(실제로 운전자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였다!) 등 피해야 할 조건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모저모 따져 보니 한 곳만 남았다.
3. 두 번째 부동산 회사를 통해 집을 고른 후 심사/계약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음
젊고 빠릿빠릿한 두 번째 부동산 회사의 담당자로부터 설명을 들었는데, 내가 고른 집의 경우 아래와 같은 비용과 절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보통 임대하려는 집에 따라 달라진다.
- 시키킹(敷金: 계약금, 나중에 청소비 빼고 돌려받을 수 있음) = 집세 1개월분
- 레이킹(礼金: 집을 빌려줘서 감사하다고 내는 사례금, 돌려받을 수 없음) = 역시 1개월분
- 보증회사에 내야 하는 보증료: 집세 1개월분의 2/3 정도
우리나라의 경우 월세 계약 시 보통 계약금의 액수가 크기 때문에 보증회사를 잘 이용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대체로 보증회사를 끼고 계약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런데 그 액수가 은근히 큰 편이어서 다른 옵션을 없냐고 물어보니 위와 같이 그냥 월세의 2/3를 내거나, 아니면 보증인을 세우고 월세 1/3을 내거나, 가장 좋은 경우 보증회사/보증료 없이 진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보증회사에서 내가 입사할 예정인 회사가 동경 증시 1부에 상장된 대기업인데도 불구하고 회사를 보증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연락을 해 왔다. 법인이 관리하는 신축 맨션(보통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튼튼한 2층 이상 집단 주택을 이렇게 부른다)이라 그런지 조건이 까다롭다. 따라서 집세의 지급 보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보증료를 다 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이곳에서 산 지 좀 된 한국인 친구에게 시키킹(계약금)을 두 달 분으로 늘리고 보증료를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게 어떻냐는 얘기를 들어 그렇게 제안을 했다.
다행히 부동산 회사에서 보증회사를 잘 설득한 덕분인지 입사 예정인 회사를 보증인으로 인정하고 시키킹은 2달 치, 보증료는 안 받는 조건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실제 우연히 알게 된 다른 부동산 업자와 일본에 오래 산 경험이 있는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협상이 어려울 듯하다는 답을 받았는데 역시 똑똑한 친구의 조언과 부동산 회사의 센스 좋은 담당자가 열심히 일해 준 덕분이 아닌가 한다.
4. 긴급연락처 확보
일본 특유의 꼼꼼함이 엿보이는 부분인데, 보증회사에서 기본적인 보증인 외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이 가능한 일본인 혹은 일본어가 가능한 외국인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나와의 관계 등을 요청해 왔다. 내 경우 이곳에 사는 지인들은 몇 명 있지만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다행히 단골 바(작지만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의 주인분이 흔쾌히 귀중한 개인정보를 손수 적어주셔서 생각보다 빨리 해결했다.
주인장의 성격이 시원시원하면서도 따뜻한 데다가 손님층이 흥미로워서 이 바에 단기간 내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올해 3월에 도쿄에 왔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일품진로나 이곳에서 구입한 미국 맥주 등을 미리 선물해 드린 덕분인 듯하다. 사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준비한 선물은 아니었는데 참... 우리네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 모를 일이다. 물론 심사를 진행하는 부동산 회사에서 그분께 연락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를 드렸고 확인이 끝난 후엔 한국 김으로 사례를 했다.
5. 계약 조건, 보증인, 긴급연락처 등의 준비가 완료되면 심사 개시
내가 돈을 내고 집을 빌리겠다는데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긴 하지만 일본에서는 괜찮은 집을 빌리려 할 경우 국적 상관없이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심사의 필요 여부 및 과정 등은 각 나라의 주택 임대 문화에 따라 다른데, 며칠 전 앞서 말한 바에서 만난 미국 시애틀 출신의 커플은 인도 뭄바이에서 집을 구할 때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3번 연속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는 계약까지 진행되는 속도도 빠르고 절차도 느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글에 적은 것처럼 내 경우 임차인을 만나서 월세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당시 계약 후 실제 입주일까지는 한 달 정도 갭이 있긴 했지만, 내가 도쿄에서 고른 집은 2016년 봄 완공 후 공실 상태인지라 왜 이리 오래 걸리나 싶어 조바심이 든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임차인/구매 예정자에게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튼 심사가 끝나면 그제야 본 계약이 진행되는데, 오늘 밤 10시쯤 부동산 회사의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심사가 문제없이 끝나 계약만 끝나면 내가 고른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휴우. 다행이다.
6. 심사 완료 후 계약 진행
오늘은 일요일인데 다른 부탁할 일도 있고 해서 내가 고른 부동산 회사 사무실에 갔다. 일본의 경우 직장인들이 주말에 집을 보는 경우가 많아 부동산 업체들이 보통 수요일에 쉰다고 한다.
담당자에게 남은 과정과 대략적인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3일 - 집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임대계약서/정산서 작성 후 부동산 업체에 송부
24일 - 계약서/정산서 도착, 밤에 계약서에 도장 찍음
25일 - 내가 입사할 회사로부터 보증인 관련 서류 도장 받음, 준비된 각종 서류를 집 관리 회사에 송부
26일 - 집 관리 회사에서 계약서 수령, 열쇠 발송
27일 - 열쇠 수령 후 나에게 전달, 입주 개시
...우리나라에선 이틀이면 될 듯한데 왜 이렇게 걸릴까. 아무튼 설명을 들은 후 부동산 회사 담당자에게 가능하면 하루라도 일찍 입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7. 입주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에 입주해서 살게 되었다. 역까지의 거리, 집의 방향, 슈퍼/편의점 등 주변 시설과 같은 기본 조건은 참 마음에 들었다. 집세는 정확히 생각했던 최대 금액이었다. 한마디로 비싼 편이다.
새집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집에 아무것도 없다. 가구는 물론이고 잘 때 필요한 이불/베개도 없어 도쿄 사는 친구에게 급하게 빌렸다. 그 덕분에 당분간은 그냥저냥 지낼 수 있을 듯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