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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운 Jul 07. 2019

나는 우울증 약을 먹는 기자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처음이세요? 네. 평생 처음이요? 네.


진료실은 좀 어두운 분위기였다. 방탈출 카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해 보이는 짙은 갈색 나무 책상은 필요 이상으로 커 보였다. 넓고 높았다. 책상 군데군데 검은 자국들이 있었다. 이 책상의 길이가 의사 선생님과 나와 마지노선인가. 조금 더 편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친절했다. 두 명이 같이 오기도 하는지 환자를 위한 일인용 소파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나와 가까운 쪽 소파에 앉았다. 긴장하면 늘 그렇듯 의자 끝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았다. 의사는 명패를 보여주면서 자기 이름을 소개했다. 유치원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다닌 병원에선 가장 심각한 증상 몇 개를 이야기하면 그다음부턴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서 대화가 이어졌다. 이곳에선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직장 스트레스요,라고 첫마디를 뗐다.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이 한 번에 이해를 할 것 같았다. 내 이야기도 그동안 인터넷 게시판에 떠도는 혹은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직장 이야기와―나에게는 다르지만―멀리서 보면 비슷할 것 같았으므로.


그동안 있었던 팀장과의 갈등. 이렇게까지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 수 있었나 나 자신에게 놀라는 나. 기자로서의 내 적성과 자질에 대한 고민. 그만두고 싶은 생각과 먹고 살 걱정 간의 충돌. 그 충돌 사이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는 극단적인 생각.


두서없는 이야기가 30분 동안 흘러나왔다. 선생님은 못 알아들은 부분도 있는 눈치였지만 잘 맞장구를 쳐줬다. 연극배우처럼 다소 과장돼 보이는 그의 반응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더 불안하게 하려는 건지 좀 헷갈리기도 했다. 가끔 그 팀장 욕을 나 대신할 때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나 때문에 누군가를 저렇게 욕할 필요는 없는데.


2019년 5월 28일. 처음으로 우울증 약을 먹었다.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해주며 아침에 한 번씩 먹으라고 했다.


영양제처럼 드세요.


약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기 위한 배려가 고마웠다. '그 팀장이 지랄을 할 때' 먹으라면서 감정을 가라앉히는 약도 줬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기 전에 처방해드리냐,라고 물어봤다.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다음 주에 또 약속을 잡았다.


우울증 약을 먹은 첫날은 내가 아닌 기분이었다. 피곤한데 카페인을 엄청 마셔서 잠은 안 오는데 멍한 느낌 같달까. 기분이 분명 나빠지진 않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신나거나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두 번째 날은 약을 늦게 먹어서인지 그다지 효과가 느껴지지 않았다. 우울했고 온몸이 아팠다. 전날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인지도. 약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됐다. 지금의 내 상태가 약 기운이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신기하다고 느꼈던 건 회사 선배의 타박에도 별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무적이 되는 아이템을 먹은 기분이었다.


우울이 줄어들어서인지 '될 대로 돼라'는 마음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감정적인 공격에 대한 방패는 되지만 적극적으로 돌진하는 창이 되진 못했다. 기자가 방패만 가지고도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일정 양의 새로움을 내놓아야 하는 기자가 가만히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도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마칠 수 있을까.


회의 자리에선 무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여러 선배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그렇게 앉아있고 싶었다. 평소 잘 웃는 내가 무표정으로 앉아있으니 다들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들을 배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그들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우울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울의 세계에서 나는 극히 평범했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나는 불편한 사람, 불안한 사람이었다. 나는 내 패턴에 맞춰서 살고 있는데 그들은 그런 내가 불안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불편하고, 외로웠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커밍아웃'하면 위로와 연민보다 나약한 패배자라고 생각할 사람들이었다. 같이 일하면 안 될 사람이라고 판단할 것 같았다. '너는 기자야', '기자가 그것도 못해?', '기자 되고 싶어서 된 거잖아'라는 말들. 남에게는 쉽게 하는 말들. 본인이 되고 싶어서 기자가 됐는데 기자 일을 하면서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건 모순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에게 내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 입을 다물기로 했다. 표정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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