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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운 May 13. 2020

마감의 추억



새벽 기자실은 조용하다. 오늘도 내가 1등이다. 석간의 설움이다. 겨울이면 난방을 돌리고 여름이면 에어컨을 켠다. 환기를 하고 책상에 앉는다. 늦잠을 잤기 때문에 택시로 출근했다. 일주일 중에 적어도 이틀은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것 같다. 월급은 받아서 무엇하는지…


아직 아침은 못 먹었지만 못 먹을 거기 때문에 기자실에 있는 인스턴트 커피랑 과자를 준비해서 자리에 앉는다. 빈 속에 믹스커피를 때려 넣으면 뇌는 이제 일할 시간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평소에 과자를 안 좋아해 별로 내키진 않지만 지금 먹어둬야 한다. 안 그러면 마감의 늪에서 미친 듯이 허우적 댈 때 당이 떨어져 패닉 상태가 된다. 입에 되는대로 쑤셔 넣는다.


아침 보고를 마치고 나면 담배를 한대 피워야 한다. 제발 팀장한테 전화가 오지 않기를 빌어본다. 전화는 무조건 안 좋은 징조다. 대개는, 니가 낸 게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저도요…), 오늘 면톱(신문 지면에서 가장 위에 올라가는 기사)이니까 길게 써야 한다(왓더...), 지금 당장 어디로 가라(왜 난데) 등등…


전화 없이 각자 기사 배분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전투적으로 기사 쓰기에 돌입한다. 거의 이삼십 분마다 담배를 피운다. 평소 담배가 잘 안 받는 체질인데 마감을 할 때는 담배가 보약 같다. 담배 타임에 꼭 한 두 문장씩은 건진다. 핸드폰에 메모해 놓고 기자실에 들어와 노트북에 옮겨 적는다.


전날 취재가 완벽하게 됐으면 기사는 저절로 써진다. 물론 그런 날은 거의 없다. 기사는 구멍이 숭숭 뚫려 너덜거린다. 구멍을 메꿔야 한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새로 짜든지. 내 안의 어떤 창의력이 기적처럼 발휘되면 연결될 것 같지 않던 문단들이 연결이 되면서 기사가 매끄럽게 흘러간다(고 한다). 물론 그런 날도 거의 없다.


대부분은 어색한 부분을 버리고 모자란 부분을 새로 채운다. 가장 좋은(편한) 방식은 관련 인물에게 전화해서 멘트를 따는 것. 하지만 지금은 아침 8시. 대부분 출근 준비로 컨디션이 바닥이거나, 이미 출근해서 컨디션이 더 바닥인 사람들에게 안면 몰수하고 전화를 한다. 나중에 팀장한테 전화를 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죄송합니다). 그들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받기도 하고, 아침을 먹으면서 받기도 한다. 받아주면 너무 고맙다.


한번은 아침에 전화를 걸었던 취재원에게 전화통화가 가능하냐고 물었는데 “지금 지하철인데… 괜찮으세요…?”라고 되물었다. 얼마나 싫었을까. 어쩔 수 없이 응대해야 하는 기자들. 나도 싫었지만 마감에겐 감정이 없다. 나는 마감이라는 문턱을 겨우 넘기 위해서, 이 사람을 아침에 괴롭혀야 했다. 내 기사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일까. 백 번을 물어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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