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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운 Jul 31. 2019

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왜 안 말리셨어요

나는 우울증 약을 먹는 기자입니다.

대기실에는 있는 회색 천소파에 앉아서 등을 기대고 고개를 한껏 젖힌다. 어딘가 불편하다. 부드러운 감촉은 좋지만 머리를 기댈 정도의 높이는 아니다. 잠깐이라도 자야겠다. 최적의 자세를 찾기 위해 몸을 움직여본다. 머리를 기댈 곳이 없다. 그냥 목을 90도로 꺾어 하늘을 보는 자세로 눈을 감는다.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걱정됐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불편하다. 몸이 불편할 걸까 마음이 불편할 걸까. 병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겠지. 하지만 또 여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특이한' 행동도 용인되겠지. 불편하고 또 한편으로 편안하다.


옆에 앉아있는 뚱뚱한 남자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이어폰을 끼고 있다. 저 무표정 뒤에는 어떤 감정이 숨어 있을까. 그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목소리는 진료실 밖 대기실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내가 평생 정신과에 올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나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아니다. 유리멘탈이라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하지만 동아리 회장도 여러 번 하고 친구 모임도 항상 주도할 만큼 활달한 성격이다. 크게 걱정이 많은 스타일도 아니어서 닥치는 대로 잘 살고 잠도 항상 잘 잔다.


특히 나는 내 감정을 잘 살펴보는 편이었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외부적 요인인지 내부적 요인인지를 살피면서 나를 위한 게 뭔지 찾는 사람이었다. 강하다고까진 못하겠지만 건강한 정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 정도랄까.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네? 좋아지면 안 되는데. 회사 그만둬야 하는데. 회사를 그만둘 명분이 이렇게 사라지나.)네...

-어떻게 지내셨나요

-팀장이 휴가여서 없는데도 계속 우울한 거 보니까 이게 병이구나 싶더라고요. 스트레스 요인이 없어지면 괜찮아져야 할 것 같은데 스트레스 요인이 제거돼도 우울한 게 사라지질 않았어요. 이게 정말 물리적인 상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울이랑 우울증은 다른 거구나, 그동안 너무 몰랐구나 싶었어요.

-그때 그 기사는 어떻게 됐어요? 쓰기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 기사는 적당히 쇼부를 봤어요. 하도 괴롭히니까 뭐 쓰라고 하면 웬만하면 그냥 쓰려고 하거든요. '나는 기자가 아니고 기계다'이렇게 생각하면서요. 기레기죠 뭐.

-그래도 쇼부를 봤다니 다행이네요.


분위기가 좀 편안하다. 내 마음이 좀 편해진 걸까, 선생님이 편해진 걸까. 난 아프다고 왔는데 친구랑 수다 떠는 느낌이다. 다른 의사도 이런가? 아무튼 왔으니 대화를 계속 이어가 보자.


-기생충을 봤어요. 그걸 보니까 그냥 거기 나오는 사람들처럼 반지하에 살아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렇게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살면 되지.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저는 기생충은 안 봤지만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생충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해주시는데요. 이런 반응은 또 처음이네요. 하하

-제가 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왜 말리는 사람이 없었는지. 원망스럽네요.


선생님은 큭큭큭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진료를 마칠 때쯤 선생님은 기자 정말 어려운 직업이네요, 하면서 존경한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손사래를 쳐야 할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어버버 하면서 진료실을 나섰다. 진료를 맡은 의사로서 하는 말일까, 한 시민으로서 하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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