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베리 Mar 18. 2024

마케팅 솔루션사의 마케팅 도전기

현업 마케터분들에게 리스펙이 생기는 순간

저는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 기술을 활용하여 예산/리소스 효율성을 제고하는 CRM 마케팅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케팅을 보다 예산, 리소스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희 조직에는 마케팅을 업으로 삼아보았던 인원은 전무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출시하는 CRM 마케팅/메세징 솔루션을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막연하고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지금도 많지만), 저희가 도와드리는 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고객사/담당자분들에 대한 존중심이 더욱 강해지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저희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배움을 몇가지 공유하고자 합니다. 


1. 반드시 다 만들고 알릴 필요는 없다

마케팅은 출시가 임박한 시점보다는 훨씬 이전부터 점진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리드타임이 상대적으로 긴 Mid-Enterprise 고객 대상의 B2B 제품일수록 그렇습니다. 저희의 경우 제품을 만드는데 집중하다보니 출시 1달 전부터야 서비스 소개서 제작, 광고 집행, 유관 콘텐츠 제작 등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관심을 가져주시는 잠재 고객사분들이 적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아주 가벼운 솔루션은 아니다보니 고객사로 전환되는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고객을 최대한 빨리 만나서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더 빨리, 더 작게 마케팅을 시작해서 피드백을 기반으로 제품도 조금씩 수정했을 것 같습니다. 


2. 지금 만들어진 기능들만 알릴 필요도 없다

마케팅은 제품의 As-is만을 알리기보다는 To-be / End-picture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첫 출시이거나 초기 제품일수록 그런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성향 상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비스 소개서의 1번째 버전에는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에 대한 소개만을 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출시 '예정'인 내용들도 같이 담았다면 더 많은 고객사분들이 관심을 주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째는 고객이 제품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제품의 경우 당장은 제한적인 기능만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고객들에게 앞으로 어떤 기능이 추가될지, 종국적으로 어떤 유저 경험을 주고자 하는 솔루션인지에 대한 계획을 공유하는 것이 고객의 도입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가치제안/기능 중 고객이 어떤 것을 좋아할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드는(제품 개발) 관점에서는 내부적으로 판단한 몇 가지 우선순위 기능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알리는(마케팅) 관점에서는 일단 우리가 구상한/계획한 것을 모두 공유하고 어떤 부분을 좋아할 지 파악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2차 마케팅 기간에는 제품의 To-be까지 담아서(물론 '예정'임을 정확히 명시해서) 서비스 소개서를 고객사들에게 보여드리려 합니다. 


3. 전환 퍼널을 세분화하고 하나씩 최적화하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퍼널을 Action item이 도출되는 단위로 세분화하여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의 경우 당장 서비스 소개서 만들고, 광고 태우고 하는 일들을 '쳐내는데' 집중하다 보니 성과 개선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광고를 태우고, 서비스 소개서 신청 폼을 만들고 보니 서비스소개서 열람을 하는 고객의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어디가 문제일지 파악하기 위해 '간접 노출(콘텐츠) - 직접 노출(광고) - 관심 유도(링크 클릭) - 서비스소개서 신청(폼 작성) - 서비스소개서 열람 - 도입 문의 - 세일즈 미팅 - 도입 확정'으로 퍼널을 세부적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니 간접 노출~관심 유도까지는 꽤나 선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직접 노출(링크드인 광고)의 경우 클릭율이 10% 이상 나왔는데, 저희의 이전 제품들이 3~4% 정도에 머물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서비스소개서 신청 퍼널에서 다들 이탈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서비스소개서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연락처 정보를 요청하고 있었는데, 다들 입력하지 않고 이탈하고 있던 것이죠. 특히 신청 폼을 1) 구글 폼 2) 유료 SaaS로 나누어서 나름의 A/B 테스트를 해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유료 SaaS 제품의 전환율이 훨씬 낮았습니다. 이에 저희 제품과의 Fit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다른 제품(Pairy)을 사용해보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퍼널을 세분화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다 구체적인 Action item을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4. Do things that Don't scale

'B2B 소프트웨어의 세일즈 & 마케팅은 양질의 콘텐츠에서 시작된다'.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이지만 저희 회사는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첫번째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콘텐츠를 쓴다고 내일 리드가 바로 들어오지는 않으니까요. 두번째로는 상당히 번거롭고 귀찮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글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상당히 어렵기에 한두편 쓰는 것도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한편 쓰고나면 질려서 한동안은 콘텐츠 작성에서는 손을 떼버리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회사와 제품의 인바운드 리드 건수가 너무나 형편없다는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세일즈 잘한다는 B2B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들을 찾아가서 여쭈어보면 하나같이 꾸준한 콘텐츠 작성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조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이게 정말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따라서 이번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는 제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3월과 4월 동안 팀 차원에서 콘텐츠 50개를 작성해보기로 마음먹었고, 지난주에 11개를 작성하였습니다. 이는 거의 작년 한 해동안 작성한 콘텐츠 수와 비슷합니다. 매일 인바운드 리드가 없다고 별로 효율도 안나오는 콜드메일을 무작위로 보내기보다는, 이번에야말로 Do things that Don't scale을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작성하고 보니 이제 막 인턴 기간을 끝낸 병아리 마케터가 쓴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 회사'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리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제품을 알리고 파는 일을 외면해왔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지금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희의 고객사이신 마케터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솔직히 '저걸 왜 못하실까'라고 감히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낮은 자세로 저희가 도와드리는 업을 존중하면서 배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저희 제품을 알리는 일을 넘어, 제품을 만드는 일에도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AI 마케팅 시대: 사례로 알아보는 AI 마케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