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시간을 사는 중입니다
이번 주에는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을 3년 반만에 다시 꺼내서 읽고 있다. 평소 다독하는 편은 결코 아니고,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살면서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이 책 생각이 났다. 솔직히 책 내용은 거의 휘발되고 없었다. 그렇지만 처음 읽을 때 받았던 긍정적인 느낌만큼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요즘 백수가 되면서 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많이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의식했던 지표는 집값이었다. 결혼할 때 아내랑 둘이서 서울에 집 한채 사는 것. 꽤 어렵지만 회사를 다닐 당시 기준으로의 벌이라면 가능했다. 그때는 깊이 생각할 여유도 의지도 없었다. 그냥 돈 많이 버는 지금의 직장 생활을 정당화해줄 수단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계속 하면 32~33살이면 5억은 모을 수 있어. 결혼과 동시에 집 문제는 해치울 수 있다고.
백수가 되면서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무너졌다. 3년 뒤에 5억을 모으는 것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 돈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어쩌면 처음으로 정립해야 한다고 느낀다. 다시 읽고 있는 <돈의 심리학>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남의 조언은 대부분 비판적으로 듣는 나이지만, 속수무책으로 설득 당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돈은 자유를 주는 재화라는 주장에 많은 부분 설득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돈을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백수가 된 나는 어찌보면 돈으로 시간을 사고 있다. 3년 전 백만 원도 없던 통장과 함께였다면 백수 생활이 지금처럼 마음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몇 년은 안 벌고 쓰기만 해도 괜찮다는 계산이 서니 마음이 편하다.
반면 만족을 모르는 욕망은 돈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것도 느낀다. 최근 주식과 코인을 비롯한 모든 자산들의 가격이 올랐다. 갑자기 눈이 돌아갔다. 조금만 잔머리를 굴리면 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저께부터 나스닥이 폭락했고 다른 자산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다행히 레버리지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랬다면 나의 돈이, 아니 나의 자유가 상당 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을 반드시 세워야겠다.
한편 절대로 모든 것을 잃을 리스크를 감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가 ‘모든 것’의 정의를 하지는 않았기에 조금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All or Nothing’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는데? 생각 끝에 정리한 것은 ‘모든 것 = 육체적, 심리적 건강’ 이다. 돈을 비롯한 외형적 자산은 다 잃더라도 내게 살아남을 능력이 있다면 괜찮다. 다만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업이 망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결과적으로 미쳐버린 내가 남는 일은 피해야겠다. 감당이 안되는 일은 벌리지 말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은 살아가면서 자주 들러서 읽고 마음에 새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분석적인 사람이고 특히 여러가지 일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개별 시행의 결과는 상당 부분 운의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를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도 솔직히 입시, 취업, 이직 등등 성취를 거두었던 많은 일에 운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성공이건 실패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분석하기보다는 장기적인 흐름에서 시사점을 얻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남의 말을 많이 듣지 말자는 것이 삶의 신조이지만, <돈의 심리학>만큼은 내 삶의 바이블로 두고 싶은 책이다. 무리한 욕심이 든다는 신호가 올 때, 과몰입해서 무리한 분석을 하고 있을 때 한 번씩 다시 찾아와서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