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는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장이었다면, <백수탈출일기>는 실행을 기록하는 일기장이다.
퇴사하고 4개월이 지나 새해가 밝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사업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다만 사업 아이템과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정비한다고 함은 주로 습관 만들기였다. 오랫동안 달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었다. 운동과 영어는 안착했지만 식습관과 수면은 실패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꽤나 완성도 높은 계획과 완전히 준비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헛되었다. 어느 정도의 그림이 그려진 이후로는 제자리걸음 이었다. 같은 생각이 돌고 돌았고 어느 순간 동력을 잃었다. 또한 사업에 대해서도 나름 공부하던 시간이 있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오래가지 않았다. 자연히 생각과 정비는 이쯤 하고 뭐라도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실행이란 것이 꽤나 어렵고 막연하다고 느낀다. 특히 내게 실행의 정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기성 집단에서 내 자리를 하나 얻기 위한 노력이 실행이었다. 입시, 취업 등이었다. 특히 나는 문과였고 내가 목표하던 곳에서 내게 바라는 역량은 '생각'이었다. 현상에 대한 분석, 미래에 대한 계획, 타인에 대한 설득 등. 나는 이런 일들에 꽤나 능숙했고 어느 순간 '생각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 필요한 역량이자 실행은 '생각'이 아닌 '생산'이다. 뭔가 만들어야 0에서 0.1이 된다. 적어도 0에서는 생각만 한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따로 만들어줄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처음에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말과 글 외의 아웃풋을 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코딩, 요리, 기계 조작 등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막연했고 쉽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생산을 해줄 사람을 갈구하던 시기가 짧게 있었다. 내가 생각하면 그걸 만들어줄 사람. 나는 주변에 잘하는 친구들 많으니까 한명 쯤은 생각이 있겠지. 아니면 누가 소개라도 해주겠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일단 처음에는 생각을 할 거리도 별로 없다. 그래서 한명이 생각하고 다른 한명이 만드는 구조는 매우 불공평하다. 그리고 생각의 가치가 크지 않다. 쌓인 데이터가 없기에 틀릴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불공평하다.
결국 처음에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줄 모른다고 핑계댈 거면 다시 생각 스페셜리스트로 돌아가야 한다. 적어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1년동안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분기별로 하나씩은 세상에 내놓을 아웃풋을 만들어보려 한다. 그러려면 생각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당장 오늘부터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