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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멘 만큼 내 땅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기 좋고, 풀어야 할 문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by 빌베리

새해 들어 본격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 사업에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래 제시된 유형 중 (3)번 유형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1) 전문가형: 의사, 변호사 등 본인의 전문성을 그대로 제품으로 활용하는 사업

(2) 장사형: 카페, 헬스장 등 기존에 정립된 시장에서 나만의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는 사업

(3) 비전형: 새로운 기술 등을 활용하여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사업


(1), (2)번과 (3)번의 차이는 공존과 독점에 있다. 앞선 2가지 유형은 시장 내에서 한 자리를 잘 잡는 것이 목표이다. 예를 들면 카페를 하나 차릴 때 우리나라 사람 전부가 커피 마실 때는 내 카페로 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3)번 유형의 기업은 독점을 목표로 한다. 어떤 문제를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내고, 동시에 모든 사람이 이를 쉽게 도입하는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배달의 민족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압도적으로 가장 좋은 대안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할(적어도 성장할 당시에는 했을) 것이다.


그래서 (3)번은 태생적으로 어렵고 비현실적이다. 어떤 문제를 단순히 풀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압도적으로 좋은 대안이면서 누구나 쉽게 접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3)번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 글에서는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나같은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새해 벽두부터 구체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사실 나는 '중독'과 '절제'라는 키워드에 꽂혀 있다. 세상에는 당장의 쾌락을 자극하지만 미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패스트푸드, 숏폼 콘텐츠, 마약, 포르노 등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독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절제(Self-control, Self-discipline)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굉장히 강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절제하지 않는다. 당장의 유혹 앞에서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절제를 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거나, 절제를 하지 않았을 때 단기적으로 찾아올 나쁜 결과를 실감할 수 있는 케이스를 찾게 되었다. 그 중에서 '포르노에 중독된 남성은 / 신체적으로 건강하더라도 / 연인, 부부 관계에서 정상적인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 상대방에게 좌절스러운 경험을 줄 가능성이 높으며 / 결과적으로 소중한 관계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문제(실제로 주변인들과 대화해보니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다)를 한번 풀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해결책이 마땅치가 않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신박한 영역을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신박한 해결책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광범위한 절제 영역에서의 솔루션들을 지난 이틀간 미친 듯이 뒤졌다. 크게 4가지 유형이 있었다. (1) 모니터링형: 기상 스터디, 출석 스터디 등 (2) 피드백형: Noom 등 건강/영양 분야에서 코치가 모니터링-피드백을 함께 제공하는 경우 (3) 챌린지형: 챌린저스 등 본인의 돈을 걸고 성공 시 환급받는 경우 (4) 차단형: 유해 사이트를 차단하는 앱 등. 이 4가지 유형의 솔루션들과 다르면서 훨씬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뾰족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방황하고 있다. 약간 좌절해서 문제 자체가 구조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인지 고민했다. 찾아보니 이미 많은 매몰비용(풀기 위한 시도)이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를 타르 핏(Tar Pit)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driven하지 않고 기술-driven한 방식으로도 잠시 생각해봤다. AI를 적용하면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내볼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이었다. 나약한 생각으로는 그냥 내가 기술적 식견이 없는 거니까 기술자를 먼저 만나고 데려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솔직히 했다.


아무튼 나는 시작했고 헤메고 있다. 하루 안에서도 좌절과 희망이 반복된다. 그리고 앞으로 여기에 방황의 기록을 꾸준히 남겨보려 한다. 헤멘 만큼 내 땅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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