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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은 독이 된다

시야가 좁아지면 위험하다

by 빌베리

어릴 때부터 TV를 거의 보지 않았다.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 <1박 2일>, <런닝맨> 등도 명절을 제외하면 본 기억이 없다. 마찬가지로 영화, 드라마도 많이 보지 않았다. 나는 관계, 사람에게 감각적으로 예민한 편이라 '연기하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흥미가 떨어진다 (그래서 외국 영화, 드라마를 비교적 선호한다. 연기하는 건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기에).


그런 내가 좋아하는 TV 쇼가 있다면 오디션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도 <슈퍼스타 K>, <K팝스타>, <쇼미더머니>와 같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많이 챙겨봤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루는 2가지 축은 참가자의 무대, 그리고 주요 참가자의 스토리텔링이다. 나는 특히 후자에 이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음악 무대만 나온다면 시청자가 봐줄 이유가 크지 않다. 훨씬 음악적으로 완성된 프로 뮤지션도 많으니까. 그보다는 이제 막 시작하는, 아직 성장하고 있는 참가자의 이야기를 함께하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특히 몰입하게 되는 참가자는 '절실함' 유형이었다. 아직까지도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슈퍼스타K2>의 허각이다.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메이저한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기회를 꼭 살리고 싶어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또한 심사위원들도 허각의 '절실함'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


허각이 아니더라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은 종종 '절실함'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절실한 참가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지를 펼치며. 어린 나는 비판 없이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때로는 돌아서서 내 삶이 충분히 절실한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 생각할 때는 괜시리 우울하거나 풀이 죽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절실함'이라는 단어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지금은 이 단어를 강조하는 것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성공에 필요한 요소는 절실함이라는 감정이 아닌, '집중' 그리고 '꾸준함'이다. 절실함을 강조했던 데는 이것이 집중과 꾸준함을 불러일으키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 지나치게 절실하면 오히려 마음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다.


절실함은 자칫 맹목성으로 이어지기 쉽다. 시야가 좁아지고 '이거 아니면 안돼', '지금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 생각이 100% 이상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면 나쁘지 않을 수도. 그렇지만 경험적으로 훨씬 많은 경우 '조급함', 그리고 이어지는 '압도감', 결론적으로 '무기력함'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면, 취업/이직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여기 아니면 안돼'라는 마음이 든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자소서를 쓰는 일 자체가 무겁게 느껴질 뿐더러, 떨어지면 의욕이 급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취업/이직은 합격할 확률이 원래 낮다. 그렇기에 자소서 50개, 100개 내본 사람이 드물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자소서 1개 쓸때마다 전심전력을 다해 쓴다면, 50개 100개 쓰기가 어렵다. 결론적으로 구직 기간이 늘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지치고 실망한 나머지 구직을 포기해버릴 확률도 높아질 것이고).


코칭을 하다 보면 절실함과 그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대화해보면 애초에 누구라도 성공할 확률이 낮거나,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이 큰 차질이 생기는 일이 아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이렇게 해야할 것만 같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다수이고, 일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때문에 절실해진 사람들도 있다 (또한 대부분 합리적으로 비교하지 않는다 - 자기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방식으로 비교한다).


피로하더라도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면 섣불리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겠지만, 이런 분들의 경우 찾아오시는 시점에서 대부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안하고' 있다. 전력질주를 하다 중간에 '스위치가 꺼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고 멈춰버린 분도 있고(아마 번아웃), 시작부터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몸이 무겁고 침대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분들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을 돕는 일에서 큰 의미를 느낀다. 의욕과 능력이 있기에, 가로막고 있는 잘못된 마음을 올바르게 잡아주면 각자의 인생과 사회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로막고 있는 잘못된 마음을 올바르게 잡아주는' 일은 마치 '막힌 호스를 뚫어주는'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게으른 사람, 하기 싫은 사람은 도와줄 방도가 없지만, 하고 싶은데 마음이 앞서 괴로운 사람은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라톤에는 페이스메이커라는 역할이 있다. 장거리 레이스를 지치지 않고, 최선의 기록으로 완주할 수 있도록 옆에서 계산된 속도로 같이 뛰어주는 역할이다. 나는 자기만의 장거리 레이스를 뛰는 많은 이들에게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스템과 가이드가 없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 부모님 세대까지는 학교-회사-은퇴가 일반적이었다. 주도적으로 창업, 창작, 부업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페이스를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불합리한 절실함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



* 관련한 코칭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향후 AI 기반 서비스로 만들어볼 예정이지만, 일단 제가 직접 1:1로 코칭 경험을 쌓으며 노하우를 익히는 중입니다.

* 6월까지는 서울대 학생들 및 관악구민 대상으로만 홍보 후 30여명과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6월 말 기준 약 100회 가량의 세션을 진행한 상태입니다.

* 관심이 있으시다면 kimshin1413@gmail.com 으로 메일 문의 주세요. 1~2줄로 코칭받고 싶은 목표와 스스로 느끼시는 문제를 서술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후 저와 10분정도 상담을 진행합니다.

* 저는 서울대학교 졸업 후 맥킨지라는 전략 컨설팅 펌에서, 이후에는 AI 스타트업에서 사업 리드로 일했습니다. 감정형(<>이성형)이면서 분석적인 성향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다른 이들의 마음을 돕는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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