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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진짜 여행

by 뽕호

혼자

20대에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참 좋았다. 물론 지금도 좋지만, 스무 살 무렵의 여행은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두려울 것도 없고, 시간은 넘쳐났으며, 체력은 말 그대로 짱짱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때, 별다른 계획 없이 훌쩍 떠날 수 있었다. 어디에 도착하든 그곳이 곧 여행지이자 목적지가 되었다. 걷다가 배가 고파지면 눈에 띄는 집 중 가장 허름하고 오래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곤 했다. 배가 너무 고프면 뭐든 맛있지만, 오래된 가게란 결국 그 시간만큼 검증받은 곳이기도 하니까.

평소에는 사람 만나는 일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데, 여행을 하면 이상하게도 사람이 반갑다. 같은 목적지, 다른 목표, 저마다의 생각과 다양한 여행의 형태들. 평소엔 아껴두던 작은 용기를 꺼내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발을 딛는다. 그 모든 경험이 곧 여행이 된다. 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만큼 소중한 기억이 된다.




둘이

혼자 여행할 때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 목적지부터 계절, 교통수단, 숙소, 의상까지. 하나하나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경험상, 여행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플랜 B는 필수다. 혼자일 땐 그 어긋남조차 여행의 묘미였지만,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완벽하지 않음은 곧 실패한 여행이다.

약간의 말다툼은 어떻게 해도 피하기 어렵다. 그래도 숙소 입구나 달리는 고속도로 위, 혹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헤어질 게 아니라면 무조건 참아야 한다. 이 여행이 '나를 위한 여행'이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좋다. 둘만의 여행은 언제나 로맨틱하고 특별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흐릿해질 만큼.




가족

아이들로부터,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의한 여행. 모든 것은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바뀐다. 첫째는 바다를 무서워하고, 둘째는 먹는 걸 심하게 가린다. 셋째는... 안 낳길 잘했다.

비행기는 고사하고, 차로 두 시간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 넓은 숙소는 너무 비싸고, 침대방은 사치다.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가족여행은 원래도 적자인데, 막상 떠나면 늘 예산을 넘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제를 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가성비 좋은 여행을 찾게 된다. 예를 들면 캠핑이나 조식과 액티비티가 포함된 호텔 패키지 같은 것들. 캠핑 장비는 비싸지만, 한 번 사두면 오래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계절에 제약이 있긴 하지만, 장비만 잘 갖추고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캠핑만큼 가성비 좋은 여행도 없다. 대부분은 캠핑이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집에서 게임과 유튜브만 보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캠핑을 선택한다.




친구

친구들과 여행을 하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그땐 돈이 없어도 친구들이 모이면 두려울 게 없었다. 지금은 성인의 경제력에 철없는 객기가 더해져, 싸움조차 즐겁고 고통조차 유쾌하다.

그럴듯한 계획이 있지만, 사실 아무런 계획도 필요 없다. 아마 여행지에 도착해서 뿔뿔이 흩어져도, 각자 만족스러운 여행을 즐길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누구 하나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먼 곳도 좋고, 가까운 곳도 좋다. 우리의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언제든 원하면 만날 수 있고, 누군가 빠진 여행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같이 여행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친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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