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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변 Sep 29. 2021

브랜드네이밍의 어려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브랜드&법 이야기 ⑥: 식별력

네이밍의 어려움

어느 선배 PD의 이야기다. 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만 5년이 지나서야 어렵사리 아이를 가졌다. 그는 이렇게 얻은 귀한 아가를 위한 완벽한 이름을 고민하느라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아가는 돌이 지나도록 이름 대신에 “아가야”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아가 이름 짓기의 어려움 ⓒminnie zhou on Unsplash

그때는 나도 웃었지만, 사실 아이 이름 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이름은 너무 흔한 것 같고, 저 이름은 너무 유행탈 것 같고… 결정을 망설이다 보면 며칠이 우습게 지나가 버린다.


브랜드의 경우도 마찬가지. 처음 브랜드를 론칭하는 순간부터 모든 창업자에게 브랜드 네이밍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잘 지어진 브랜드 네임은 제품을 쉽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도 하며, 웃음을 주거나 감동을 안기기도 한다.  


심플해야 하고, 눈에 잘 띄어야 하고, 참신하면서도 너무 낯설지는 않아야 하고.. 여러 조건을 통과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브랜드 네임은 오랫동안 기업과 제품을 대표하는 아이덴티티가 된다.

많고 많은 브랜드 ⓒMike Cassidy on Unsplash
브랜드 네임을 등록하려면

이렇게 만들어진 브랜드 네임은 상업적으로 잘 활용될 때에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러자면 ‘상표등록’이 필요한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리 좋은 이름이라도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에 해당된다면 등록할 수 없다.


(1)   다른 사람이 선점한 이름인 경우

(2)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인 경우


이 중 (1) 다른 사람이 선점했는가의 문제는 yes or no의 답변이 가능한 선명한 사안이므로 문제 되는 일이 적다. 또한 선점된 상표의 경우라면 해당 상표를 매입하거나, 상대방이 등록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는 경우 불사용 취소 심판을 청구해 상대방의 상표를 소멸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2)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인가의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실제로 의뢰인들이 고심 끝에 가져온 상표 중 상당수는 위 두 번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상품의 식별력

지난 시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상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나의 상품과 다른 이의 상품을 구별하는 기능(=식별력)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별 짓기가 불가능하다면(즉, 상품 식별력이 없다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가 없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해당 상표의 등록은 거절되거나 무효가 된다. 이게 바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누구나 사용가능한 식별력이 없는 상표란 어떤 상표일까? 사례를 통해 대표적인 몇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1)    보통명칭

‘요구르트(요거트)’, ‘엘리베이터(승강기)’, ‘샤프(기계식 연필)’, ‘슬라임(하이드로겔 장난감)’ 등이 그 예다. 이들도 처음엔 분명 어느 브랜드 내지 제품의 이름이었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종류의 모든 제품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자면 “거래 사회에서 그 상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실제로 사용되고 인식 되는 명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보통명칭의 경우 안타깝지만 더 이상 상표로서 보호되지 않는다.


슬라임은 이제 보통명칭 ⓒ특허청 블로그


2)    관용상표

‘깡(과자류)’, ‘나폴레옹(꼬냑)’, ‘가든(식당)’ 등을 떠올려 보라. 조금 어렵게 말하면, “어떤 상품을 취급하는 동종업자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상표”를 말한다. 이런 이름들도 위 보통명칭과 유사하게 상표로서 등록할 수 없다.


3)    현저한 지리적 명칭

‘조지아(커피)’, ‘종로학원(학원)’, ‘장충동 왕족발(식당)’ 등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을 포함한 상표로서 식별력이 없다. 중국에서는 ‘파리바게트’가 이러한 이유로 상표등록이 무효화되었다.


4)    기술적 표장

‘데코시트(장식재)’, ‘골드 블랜드(커피)’ 등 상품의 품질, 효능, 생산방법 등을 나타내는 단어들도 식별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5)    간단하고 흔한 표장

‘가’, ‘나’, ‘A’, ‘11’ 등은 모두 너무 간단하여 식별력이 없다. 다만 ‘LG’, ‘CJ’처럼 실제 오랜 사용에 의해 특정인의 출처 표시로 직감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식별력이 인정된다. ‘△’, ‘□’ 등의 도형도 식별력은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식별력은 고정불변일까

기억해야 할 점은 식별력은 가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식별력이 없는 상표라고 해도 반복 사용의 결과 많은 소비자들이 다른 제품과 구별할  있게 되었다면 이후에 식별력을 획득한 것으로 보아 등록 적격을 가질  있다. 예를 들어 아까 ‘이라는 단어에는 식별력이 없다고 했는데, 새우깡은 등록된 상표다. 왜일까? 장기간의 사용에 의한 특별현저성이 형성되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새우깡은 식별력을 얻었다구! ⓒ농심

반대로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상표가 광범위하게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식별력을 잃어버리고 보통명칭이나 관용상표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초코파이’ 사례가 이에 해당하고(그래서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 초코파이가 있는 것), ‘아스피린’, ‘Jeep’, ‘매직블록’ 등도 유사한 사례다.

식별력은 가변적이다 ⓒthought catalog on Unsplash

흔히들 브랜딩은 마케팅과 차이가 있다고 한다. 마케팅은 단기간의 실적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브랜딩은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볕을 쪼이듯 어떤 회사가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의 스토리를 만들고 정체성을 쌓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딩 과정에서 브랜드 네이밍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도 드물다. 그러니 애써 창작한 브랜드 네임이 상업적으로 의미를 잃지 않도록 처음부터 '식별력'의 문제를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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