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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샘 지연 Nov 06. 2024

<막내의 사생활>


 “5학년부터 진로지도가 있어요. 여러분의 꿈에 대해서 점검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내일까지 꼭 커리어넷에서 검사하고, 알림장에 부모님 사인 받아 오도록!” 

 하늘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선생님이 말했다.   

 ‘진로는 무슨? 검사한다고 꿈이 막 생기나?’

 나는 가방을 챙기며 생각했다. 작년부터 주위에서 내가 사춘기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정말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집에 사춘기를 보여주는 괴물이 둘씩이나 있는데, 무슨! 나는 사춘기가 아니고, 그냥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대답이 없었다. 

 ‘엄마는 또 어딜 간 거야? 또 그것들 때문인가?'

 나는 냉장고문을 괜히 열었다 닫았다 했다. 냉동실에서 나오는 찬 기운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봄인데, 왜 이렇게 썰렁해?”

 나는 거실로 가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그때 현관문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들어왔다. 나는 엄마가 들어온 것을 모른 척 하면서, 채널을 마구 돌렸다.


 “은서야, 엄마 왔는데, 인사 안 해?”  

 “알아, 어서 오시와요!”

 나는 비꼬듯이 말하며, 엄마를 흘낏 쳐다보다가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특목고 설명회 갔다가, 장도 보고 왔지.”

 엄마는 가득 찬 시장 가방을 양손으로 들고 주방으로 가면서 말했다.

 “선생님이 커리어넷에 가입해서 뭐 하래. 엄마가 해줘!”

 “은서야, 뭐라구? TV 좀 줄여!”

 엄마가 거실로 오면서 말했다.

 “엄마 바쁜데, 너가 하면 안돼?”

 “나한테는 신경도 안 쓰면서 왜 그렇게 바빠?”  

 오늘은 꼭 엄마한테 따져볼까 했다. 내가 막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엄마의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네……” 

 엄마는 전화를 받으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또 언니들 학원 선생님과 통화하나 보다. 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끝이 없다. 나는 엄마에게 따질 기회를 또 놓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어진 건 우리 집 여자들 때문이다. 엄마는 중3, 중2 언니들 매니저 노릇 하느라 바쁘다. 두 언니는 공부하랴, 취미생활 하랴 역시 바쁘다. 나는 세 여자처럼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 그런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열두 살에 나는 이미 깨달은 것을 왜 세 사람은 모르는 걸까? 나는 아빠를 닮았나 보다. 아빠는 느긋하다 못해 게으르다.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주말에만 오는데, 아빠는 집에 오면 늘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잔다. 나한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나 치킨을 잘 사주는 좋은 점도 있다.      



 “누가 내 폰 만졌어? 언니, 너지?”

 “뭔 소리야? 나 아니거든!”

 토요일 아침부터 거실에서 언니들이 싸우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신상 굿즈에 문제가 생겼구만. 둘이 또 한판 하겠군! 나가지 말고 잠이나 더 자자.’

 나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 두 사람이 바로 우리 집 괴물이다. 평일에는 각자 학원 스케줄로 바쁘니까 큰 문제가 없는데, 토요일 아침만 되면 저렇게 둘이 붙어 싸운다. 둘은 연년생으로 태어났고, 쌍둥이처럼 키도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돌이 같다. 이게 주말마다 집안을 뒤집어 놓는 이유다. 


 어김없이 엄마의 버럭 화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시작이지! 토요일 아침마다?”

 “언니가 내 폰 막 만졌단 말이야!”

 “야, 최민서! 내가 언제 그랬어? 넌 보지도 않고 막 우기더라.” 

 “너네 계속 싸우면 콘서트 못 가! 굿즈인가 뭔가도 못 사게 할 거구.”

 엄마는 이렇게 말로만 한다. 나한테는 엄마가 언니들을 혼내는 게 아니라, 셋이서 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의 경고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언니들은 콘서트도 가고, 굿즈도 살 것이다. 엄마는 언니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니까. 언니들은 시험을 잘 보면 뭐든지 살 수 있다. 돈을 펑펑 쓰는 언니들이 한심하다가도, 부럽기도 하다.     


 큰언니가 작은언니보다 일찍 돌아온 날이었다. 나는 식탁에서 숙제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는 큰언니를 따라 들어갔다. 큰언니는 5학년 때만 해도 꽤 괜찮은 언니였다. 그때는 등교할 때 꼭 나를 데리고 갔다. 아빠가 따로 용돈을 챙겨줬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나는 언니 침대에 걸터 앉으며 큰언니 등에 대고 말했다.

 “큰언니, 이제 뭐할 거야?”

 “뭐하긴? 숙제해야 돼. 나가 줄래?”

 언니는 기운 없이 대답했지만 나는 그냥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언니는 공부해. 난 그냥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있을게.”

 수학 문제집을 찢을 듯 거칠게 넘기면서 언니가 말했다.

 “최은서! 피곤하니까 빨리 나가!”

 “치, 알았어!” 

 나는 방을 나왔고, 언니가 문을 닫았다. 그냥 돌아서기 아쉬웠다.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나는 바로 뒤돌아 언니 방문을 활짝 열었다.

 “언니, 뭐하는 거야? 공부 한다더니 폰 들여다보고 있잖아.”

 “최은서, 누가 막 들어오래? 숙제하는 거라구. 바보야! 밤 새워도 다 못한단 말이야.”

 “어떻게 하는 건데? 얘기 안 해주면 엄마한테 말할 거야. 답 베낀다구.” 

 “너…… 계속 그럴 거야? 흑!”

 언니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커다란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울어? 갑자기 왜? 내가 뭐…….”

 흐느껴 우는 큰언니의 어깨가 위 아래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책상에서 티슈를 뽑아서 언니에게 건네주었다.

 “요즘 힘들어서…… 수학이 너무 어렵다구……. 콴다에서 보고 하는 거라구.”

 “뭘 울어 그렇다구. 콴다? 그게 뭔데? 난 스마트폰도 없잖아. 잘 모른단 말이야.”

 “……”

 “엄마한테 얘기해. 언니 말은 잘 들어주잖아. 힘들다고 해 봐!”

 “엄마가 어쩌겠어? 민서가 나보다 수학 빨리 나간다고 자랑한단 말이야. 너까지 힘들게 할 거야?”

 “그냥 궁금해서…… 나갈게.”

 나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큰언니 어깨를 두드려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방을 나왔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울긴 왜 울어? 바보!’

 엄마, 아빠한테 큰언니가 이상하다고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큰언니는 어울리지 않게 화장을 짙게 하고, 남자친구도 있는 것 같은데, 참 걱정스럽다. 나는 사춘기가 오더라도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언니도 평범하지 않다. 작은언니는 아이돌 굿즈와 비싼 문구류를 모으기 대장이다. 그리고 아주 지저분하다.

 웬일로 방문이 열려 있던 날이었다. 책상 위에는 각종 학용품이 늘어져 있고, 방바닥에는 책이며 벗은 옷들이 널브러져 뒹굴고 있었다. 지우개가 없어서 빌리려고 작은언니 방에 들어서다가, 참지 못하고 내가 말해버렸다.

 “방이 이게 뭐야? 전교 1등을 하면 뭐하냐?”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시비야? 들어오지 마!”

 책상에 남아있는 좁은 공간에서 뭔가를 적고 있던 작은언니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갈 테니까, 지우개 하나만 줘.”

 “넌 지우개도 없니? 그래서 공부가 되냐? 한심하다.”

 작은언니는 책상 위에 있는 지우개 중 하나를 골라서 방바닥에 던졌다.

 “지우개 하나 주면서 큰소리는……. 언니 너처럼 공부 할 거면 난 안 해.”

 “언니한테 너라구? 엄마한테 이른다!”

 “언니도 큰언니한테 너라고 하잖아. 너한테 배운 거다 뭐! 근데, 내 돈은 왜 안 갚는데? 어디다 돈을 막 쓰고, 동생한테 빌려 쓰냐!”

 작은언니는 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야, 최은서! 왜 그래 아침부터…… 갚으면 되잖아.” 

 “나한테 돈 빌려서 몰래 콘서트 간 것도 얘기할 거야.”     

 “시험 잘 봐서, 콘서트는 괜찮거든! 돈 얘기만 하지 마!”

 “글쎄…….” 

 나는 이번에도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았다. 해봐야 작은언니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엄마도 어쩌지 못할 게 분명하다.      

 

 우리 언니들이 괴물이 된 건 모두 엄마 탓이다. 엄마는 쓸데없이 부지런하다. 언니들이 뭔가를 해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해결해 준다.

 “엄마가 무슨 해결사야? 언니들이 나중에 엄마한테 고마워할 줄 알아?”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 내가 한마디 했다.

 “최은서!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넌 공부나 해. 너는 하고 싶은 거 없어?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아니야.”

 ‘으이구! 걱정해 주는데, 엄마는 또 딴 소리지…….’

 괜히 말했다고 후회가 되었다.     

 ‘내가 참고 가만히 있으니까, 우리 집 여자들이 나를 무시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욕심 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쓰레기통이야? 왜 난 입던 옷만 입어야 하는데? 언니들은 원하는 옷 다 사주잖아?”

 엄마한테 따진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잠시 놀란 눈으로 쳐다보더니, 

 “갑자기 왜 그래? 멀쩡한 옷을 그럼 버려? 우리 막내는 알뜰하잖아.”라고 했다. 

 ‘뭐야, 나한테 미안해하면서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반응이 뭐 저래?’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다시 토요일, 역시 아침부터 언니들이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다. 오후에 엄마가 언니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러 나간 사이, 나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먼저 안방의 옷장 깊숙한 곳 상자에서 내 첫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신 금거북을 꺼냈다.  

 ‘이건 도둑질이 아니야. 내 걸 가져가는 건데 뭐.’

 그리고 큰언니 방에 가서 책상 위에 있는 화장품을 내 백팩에 마구 넣었다. 작은언니 방 책상에서는 샤프와 캐릭터 문구류를 여러 개 가지고 나왔다. 나는 언니들이 아끼는 것을 한강에 던져 버리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광진교 근처에서 내렸다. 광진교는 다른 한강 다리에 비해 아담해서 내가 좋아하는 다리다. 한강과 탁 트인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미세먼지도 없고 맑은 봄날이었다. 나는 광진교 위를 천천히 걸었다. 혼자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하지만 점점 뭔가 허전했다. 우리 집 세 여자들이 보기 싫어서 같이 있기 싫어서 나왔는데, 자꾸만 왜 생각이 나는 걸까?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규원이가 우리 집 앞 화단 난간과 벽에‘최은서 바보’라고 쓴 일이 있었다. 규원이는 앞 동에 살아서 엄마와 언니들도 아는 남자애다. 지우가 우리 집에 와서 큰일이라도 난 듯 낙서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 언니들이 엄청 흥분을 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규원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둘이서 협박을 한 것이었다. 한참 어린 동생한테 누나 둘이서 말이다.

 “너, 은서가 우리 동생인 거 몰라? 걔 건드리면 우리가 가만 둘 줄 알아?” 

 언니들은 집에 오자마자 내 앞에서 둘이 한 말을 그대로 재현했다. 낙서 깨끗하게 지우고, 나한테 꼭 사과하라고 전했다고 했다. 언니들한테 고마워하라고, 이런 언니들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하면서 둘이서 신이 났었다. 규원이는 그날 저녁에 우리 집 앞에 와서 나한테 사과를 했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도 못 들고 사과를 받았다. 그때는 자기네 일도 아닌데 시끄럽게 나서는 언니들이 창피했다. 그런 언니들이 있다는 게 부끄러웠는데……. 그 생각이 왜 지금 나는 걸까? 나라면 내 동생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 엄마도 그때 한몫 했다.엄마는 규원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조심해 달라고 말했다. 

 ‘정말 우리 집 여자들은 못 말린다니까…….’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일교차가 심해서인지 노을이 더 아름다웠다. 가족들이랑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은 뭐가 사라진 건 알까? 나는 이걸 왜 가지고 나온 거니?’

의욕이 확 사라졌다. 강물에 다 버리려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이! 결심을 했으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했어야지…….”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집을 나와 보니 갈 곳도 없고 모든 게 귀찮아졌다. 내 것이라고 챙겨온 금거북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나는 어느새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법 어두워졌다. 햄버거를 사먹으려고 돈을 챙겨 나왔는데, 배가 고픈데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의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게 느껴졌다. 엄마와 언니들은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은서야, 어디 갔다 이제 와?”

 엄마가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 언니들은 웬일로 아무 말도 안하고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는 대답 대신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저녁은 안 먹어? 나 배 고파!”

 가방은 나갈 때보다 몇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금거북이 아니라 돌거북을 들고 나갔던가?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도 나오려고 했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욕실로 향했다. 

 “언니가 모은 돈으로 너 좋아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케이크 사왔어. 냉동실에 있으니까 밥 먹고 같이 먹자!” 

 큰언니가 내 등에 대고 크게 말했다. 역시 생색내기 대장이다. 

 그래도 오늘은 봐주기로 했다. 내 생각을 하긴 한 거니까. 일단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계획을 다시 세워보기로 했다. 


 다음에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제대로 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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