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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내가 좋다 Mar 03. 2024

와… 이제야 알았네

 45년 만에 알게 된 나의 취향표류기

  2024년, 나는 45세가 됐다.

너무 늙지도, 너무 젊지도 않은 나이. 김미경 님의 마흔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보니 나는 우리나라의 딱 허리인 중위나이라고 한다.

라이프스타일 나이로 이제 지금이 딱 정오인 시기라고.

뭔가 힘이 나는 것도 같고, 혹은 이런 문구에 힘이 나는 것 자체가 나의 마음속에는 내가 늙어있구나… 의기소침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오히려 힘이 빠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결국 나는 힘이 나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많고 싶기 때문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아 깔려 죽을 것 같은 갑갑함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내가 이루고 싶거나 시도해 보고 싶거나 혹은 나의 손길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느껴지는 시기.

나는 아직 그만큼 쓸만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많고 싶다. 나의 자발적인 요구로.

그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대학생활부터 방송작가로 10여 년을 사는 동안, 나는 나의 취향이 몹시도 확고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옷, 화장, 친구들, 즐겨보는 콘텐츠들,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습관들부터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서 나는 항상 원하는 바가 비교적 명확했던 것 같다.

단지 노력이 부족하거나, 내가 게으름을 부리거나 곁눈질을 하는 바람에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취향을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다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 내가 나 자신의 취향을 몰랐기 때문에 들었던 생각이라는 점이다.

나에 대해 정확히 몰랐고, 알아보려는 노력이 별로 없었으니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일도 없었고,

그러니 나의 한계를 경험하거나 극복해 낼 때 나에게서 보이는 여러 가지 면모와 감정의 파도를 알아볼 일도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평탄한, 너무너무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었나 보다.

물론, 어찌 보면 참 행운아인 셈이다. 크게 힘들거나 고민할 일이 없었다는 의미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내가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흥미 있었던 직업을 가지고 나름대로 인정받으면서

평탄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온 모양이다.

30년 넘게 남으로 살던 한 남자와의 결혼생활, 육아,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체력의 저하, 부모님에게 생겨나는 노년기의 크고 작은 문제들,

각자 가정을 이루고 본인들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입장이 달라져 버린 나의 형제들 등등…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일들을

겪는 십 수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니 어느덧 45세.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이것 하나다. 아… 나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구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하다. 나의 바닥을 알게 된 기분이라는 게 비참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느낌도 든다. 직장생활 십여 년, 주부생활 십여 년, 이제 노년을 준비하기에 십여 년이 남아있으니

나는 나에 대해 알고 공부하고 천천히 만들어 가면서 또 십여 년을 살아갈 수 있다.


무엇이든 알게 되는 것이 시작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자각하는 것.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거나, 하다가 실패했을 때…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수습할 것인지.

나는 나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인지하고, 받아들여 줄 셈이다.


인생의 정오에, 딱 허리춤에 올라와 있는 나이.

지금까지 나는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걸음마를 시작하며, 허벅지와 엉덩이에 근력을 붙이고 혼자 설 수 있는 코어에 힘을 붙였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의 생존에 직결되는 주요 장기들이 들어있는 상체와

무엇보다 중요한 머리, 모든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생각의 기관을 만들어 갈 시기에 서 있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지나간 시간이 아쉽다.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 생각은 그대로 두자.

그 시간만큼 나는 근력을 키웠을 테니까.

앞으로 나의 색깔을 만들어 나갈 십여 년을 보내봐야겠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지금 하고 싶은 게 뭘까…

마흔다섯, 나의 화두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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