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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내가 좋다 Mar 26. 2024

말랑말랑라이프를 위하여

나의 취향표류기- 한식디저트2.


    봄이 왔다.

40대 중반에 운동을 멀리하다보니 늘 몸이 뻣뻣하지만, 길 가에 핀 벚꽃이며 앙상했던 가지 위에 파릇한 것들이 수도 없이 비어져 나온 모습을 보며 걷노라니 마음이 한결 밝아지고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해마다 길 가에 ‘초록색’이라는 말 만으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새싹들이 언제 저렇게 다 나왔나싶게 여기 저기 모습을 드러낼 때 쯤이면 나는 슬그머니 롱패딩을 벗고 경량점퍼를 꺼내입는다. 사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고 워낙 활동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두꺼운 점퍼를 남들보다 오랫동안 입는다. 그러다보면, 아무리 기능성 점퍼라고 해도 몸이 좀 더 무겁고 둔해지게 마련이라 햇살이 제법 따끈한데도 나 혼자 웅크리고 길을 걷고 있는 걸 깨닫게 될 때가 많다. 항상 승모근이 뭉쳐서 약간의 근육통이 있고 한껏 말린 어깨로 팔짱을 끼고 있는 게 오히려 좀 더 안정감이 있는 자세 말이다.  그러니 사실 아직 나는 좀 춥다고 느끼지만, 마음과 생각에 먼저 봄을 불러와야 게으른 내 몸도 따라올 것 같아서 얇고 화사한 옷과 점퍼를 꺼내 입고, 겨우내 똘똘 뭉쳐 뻣뻣해 진 것 같은 내 몸을 살살 풀어본다.


  이번 봄에는 좀 더 화사한 봄맞이 행사를 더해보았다.

매달 찾고 있는 한식디저트 수업에서 벚꽃우이로를 만드는 일이 그것인데, 흔히 화과자로 알고 있는 일본식 다과이다.

은은하게 뽀얀 꽃잎 속에서 분홍빛 꽃물이 스며나오는 기분 좋고 설레는 빛깔.  매년 보는 같은 꽃이지만 벚꽃은 늘 새롭고 향긋하고 찰랑찰랑하게 마음을 채워주는 느낌이 있다.

그런 벚꽃을 닮은 다과와 쌉싸름하니 담백한 호지차를 한모금 곁들이는 찻자리라니… 봄맞이로 손색이 없다.


분홍색과 노란색, 흰색으로 색을 낸 떡 반죽들을 하나하나 성형하고 부드럽게 만들어낸 흰앙금을 속에 넣어 감싼다. 원래 화과자를 만드시는 분들은 15초에 하나씩은 이 과정을 할 수 있어야 반죽이 굳어지지 않는다는데 웬걸… 15초는 커녕 균일한 두께로 앙금을 감싸는 것도 어렵다. 구멍 안뚫리면 다행이니 시간은 욕심내지 말고 차근차근 예쁘게하는 데만

집중하자. 다음은 꽃모양을 성형한다. 최대한 손가락 자국이 찍히지 않도록 손의 움직임에도 신경을 쓰면서 도구들을 이용해 최대한 예쁘게 꽃을 피워본다. 디테일까지 신경쓰면서

예쁘게 마른 꽃과 금박, 작게 찍어낸 꽃모양반죽, 앙금으로 만든 꽃 수술까지 손끝이 파르르 떨리지만 아닌 척하면서 집중 또 집중.  살살… 조물조물… 이렇게 저렇게… 얍!


          ( 나의 사진 솜씨가 좀 더 좋았더라면 예쁘고 조금씩 다른 색상이 더 잘 보였을텐데 아쉽다. ^0^ )


   이렇게 내 첫 벚꽃화과자가 완성됐다.

같은 반죽들을 이용해서 만들더라도 조색된 반죽양을 조절해 가면서 모양을 어떻게 빚을지 변화를 줘 가면서 만들었더니 이렇게 화사하고 소담한 빛깔의 예쁜 것이 피어났다.  

말랑말랑한 식감 속에 보드랍고 포슬한 달콤함이 폭 안겨있는 봄의 맛.

하루 이틀이면 굳어져버릴 수 있으니 빨리 먹거나 아니면 냉동보관을 했다가 먹으라고 공방 선생님이 보관법을 일러주셨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차와 함께 완성된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업그레이드 된 내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가족들에게 큰 소리를 잔뜩 쳐놓고 집을 나섰으니 그럴싸한 찻자리를 꾸며서 짠~하고 내놓아야지. 마음을 먹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달지 않은 차 한잔과 함께 예쁜 접시에 꺼내 놓았다.

사진을 찍고, 얼른 집어 하나 맛보고, sns에 올리고, 핸드폰 바탕화면과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등등…

가족들의 반응이 핫하다. 뭔가 뿌듯하다.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익숙함이 아니라 작은 생기가 가족 모두에게 감도는 느낌…

주말 오후 우리 세 가족은 말랑말랑한 화과자 덕분에 분홍빛으로 촉촉하게 봄이 스며드는 기분 좋은 마음의 호사를 만끽했다.


   공방 선생님 말이 수강생마다 떡 반죽을 조색하라고 하면 분홍색의 강도가 다 다르고, 꽃을 성형하는 손 놀림도 다 달라서 다른 느낌의 과자를 만든다고 한다. 화과자는 어느정도

크기나 모양의 공식이 정해져 있는지라 선생님의 가이드에 따라 만들면 큰 틀에서는 같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다 다른 개성있는 꽃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말랑말랑한 반죽은

주인이 입혀주는 색과 손놀림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라진다. 좀 더 붉거나 좀 더 은은한 분홍을 띄거나 모양이 좀 더 둥글거나 좀 더 뾰족하고 주름지거나

아무래도 좋다. 모두 예쁘고 모두 촉촉한 봄이다.

  

  사람의 몸도 사람의 일도 모두 이런 말랑말랑함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겨우내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으면 늘 근육통에 시달리고 삼십대 후반만 되어도 어느 곳인가 한 두곳의 가동범위가 전만 못하게 제한되곤 한다. 그래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운동을 시켜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면 한결 편하게 움직이고 통증도 사라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한동안 액체괴물이나 스퀴즈 같은 놀이에 열광적으로 빠져들었던 것도 그런 말랑말랑한 촉감이 무언가 부족했던 감각을 채워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말랑말랑함이 늘 필요하다. 오해나 분쟁이 생겼을 때 해결의 첫걸음은 누가 먼저 유연하게 수용적인 태도로 상대의 생각을 받아줄 것이냐에 있으니 말이다. 내 마음의 여유가 있고 생각이 유연한 사람들은 서두르거나 초조하거나 비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이 굳어지면 내 고집이 생기고, 타인이나 상황이 나에게 준 피해나 상처를 더 아프게 생각하게 되어 점점 더 슬프고 힘들고 억울해져 버리는 것이다. 사람이든 아이들의 장난감이든 오늘 내가 만든 화과자든 제 기능과 가치를 가장 잘 발휘하는 건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상태를 유지할 때인 것 같다.  


  말랑말랑한 반죽처럼 살아보자.  잘못 콕 찍혀서 흠집이 생기면 다시 뭉쳐서 동글동글 매끈하게 빚으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반죽이 굳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서 과자를 빚고

제일 맛있는 시기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몰캉하고 기분 좋은 그 식감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런 기억과 느낌으로 행복을 내 생활 속에 항상 촉촉히 채워둘 수 있다.

며칠 뒤엔 친한 친구들을 불러 벚꽃 우이로 한조각과 따끈한 호지차 한잔을 나눠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근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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