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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Jan 25. 2021

감자튀김 냄새가 밴 고찰

슈퍼을 열아홉 알바생의 버거왕에서 살아남기 - 먹고 살기 힘들다 ep.4


< 먹고 살기 힘들다 >

부제 : 슈퍼을 열아홉 알바생의 버거왕에서 살아남기


ep.4 - 감자튀김 냄새가 밴 고찰


 줄거리 : 유럽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후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계획이 망가지는 걸 지켜보던 열아홉 백수는 이 시국이 끝나는 날을 기다리며 자본주의 사회에 발맞춰 금전적 대비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친구의 꼬드김에 갑작스레 입사한 버거왕. 아무것도 모른 채 주휴수당만 바라보고 일을 시작했던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지하철 1호선 뺨치는 무법지대라는 것을….






 작은 거 1600원, 큰 거 2100원. 내가 일했던 패스트푸드점 감자튀김의 가격이다.


 햄버거 단품 혹은 세트보다 사이드 메뉴만 시켜 먹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던 우리 매장에서 제일 잘 나가던 제품은 감자튀김과 아메리카노(한 잔에 1000원이다.)였다. 아침에 매장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와서 감자튀김이나 커피를 시킨 채 서너 시간을 앉아있는 손님들도 꽤 많았다.


 특히 카운터 직원인 나에게 가장 가깝고 익숙한 건 감자튀김이었다. 내가 입사하던 당시에 만들어진지 반 년 정도 밖에 안 되었던 우리 매장은 다른 매장에 비해 감자튀김 기계가 카운터에서 가까웠다. 주문이 들어오는 스크린을 확인한 직후 손을 뻗으면 바로 감자튀김을 담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한 주 근무가 다 끝난 후 세탁을 위해 챙겨온 유니폼을 종이가방에서 꺼내 세탁 바구니에 담을 때마다 감자튀김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어떨 때는 많은 것들이 감자튀김처럼 느껴졌다. 내가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에는 본사에서 만든 수백 가지의 매뉴얼이 있었는데, 철저하고 안전하며 깨끗하게 매장과 식품을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조항들이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규칙들도 몇 가지 있었다. '튀겨놓은 감자튀김은 15분이 지나면 전량 폐기하라'는 매뉴얼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는 이유로 제대로 사용조차 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존재들을 볼 때마다 감자튀김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감자튀김을 닮아가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나였다. 아니, 닮아가는 게 아니라 거의 동일시 되었다. 감자튀김이 곧 나고 내가 곧 감자튀김이었다.


 그런 기현상은 손님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감자튀김만(혹은 자잘한 사이드 메뉴만) 시키는 손님들은 거의 나이가 많았고, 주문 기계인 키오스크를 조작하지 못해 직접 말로 주문하는 일이 흔했다. 바쁘게 주문과 자잘한 업무들을 처리하다 카운터로 손님이 오면 일단 한숨이 나왔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애써 사근한 투로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이런 말이 돌아왔다.


 "감자튀김." 또는 "감자튀김 줘."
 "저번에 왔을 때 감자튀김 시켰는데 케찹도 하나만 주고 감자튀김은 퍽퍽해서 목에 걸려서 소화도 안 되고 계속 딸꾹질이 나고 맛대가리가 없는데 가격은 왜 이렇게 비싼지 진짜 어이가 없.......(이하 생략)"
 "(턱짓으로 감자튀김 기계를 가리키며) 저거."
 "서비스로 하나 더 주면 안 돼?"


 그렇다. 카운터로 주문을 받기 싫은 이유는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10명 중에 9명은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반말을 하거나, 저번에 주문한 제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내게 화풀이를 하거나, 카드를 던지거나, 막무가내로 무언가 요구하거나... 여하튼 그랬다. 물론 말단 직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불만을 잠자코 듣다가 "죄송합니다."하며 대답하는 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손님들의 무례함이나 세상을 향한 신경질이 사그라드는 건 아니었다. 조용히 계산을 해준 후 감자튀김을 담을 때는 양이 적으면 본사에 전화할 거라고 같잖은 으름장을 놓았고, 사과를 건네거나 시정 조치를 약속하면 말은 잘한다며 비아냥댄 후 엄청난 일침이라고 생각하는지 괜히 우쭐해했다.


 그럴 때마다 난 점점 감자튀김이 되어갔다. 감자튀김에 대한 값을 지불하고 덤으로 알바생을 마구 쥐고 흔들 권리를 샀다고 여기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2000원. 그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 지폐 두 장 어치에 따라오는 사은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기하급수적인 돈으로도 인간은 사고 팔 수 없다고 배웠는데, 팔려가지 않아도 팔려간 나는 고작 그 정도였다. 


 패스트푸드점을 퇴사한 지 어느덧 3개월. 과로사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 택배 기사들과, 주민의 모진 폭력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과,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홀로 일하다 아스라이 바스러진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이야기로부터 익숙한 향이 불어온다. 그러다 출퇴근 길에 타던 지하철에서 푸석한 얼굴로 메마른 눈동자를 굴리던 내 모습이 비쩍 마른 노란색의 감자튀김과 겹쳐보이던 나날들을 떠올린다. 또 어디선가 냄새가 난다. 저렴하고 알찬 간식이 아닌, 쉽게 버려지고 말라 비틀어지는 것들의 상징으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감자튀김의 냄새가.


 그 냄새 앞에서 나는 코를 막고 향을 피운다. 한 때 죽어버렸던 나의 인격과 영원히 떠난 모든 것들을 애도하기 위해.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그만 뒀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만 뒀고요. 대신 운 좋게 저의 이야기들을 글로 묶어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이야기는 그 책에서 더 하게 될 테니... 이제는 '즐겁게 먹고 살' 생각을 좀 해보려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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