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이불을 갠다. 식물에게 물을 주고 세수를 한 뒤 작업복을 입는다. 소지품을 챙겨 현관문을 열고 새벽하늘에 옅은 미소를 보인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고 낡은 차에 탄다. 오래된 올드팝 카세트테이프 중 하나를 고르고 출발한다. 점차 밝아지는 도로 위로 음악과 함께 그의 차가 달려간다. 공중화장실 앞에 차를 주차한다. 차 문을 열자 애용하는 청소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다. 그는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이다.
물 흐르듯 익숙하게 청소를 한다. 사람이 오면 조용히 밖으로 나와 기다린다. 벽에 기대 서서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미소를 보인다. 사람이 가면 다시 청소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에 항상 들르는 신사에 샌드위치와 음료를 싸간다. 낡은 필름 카메라를 꺼내 커다란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는다. 퇴근 후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에 간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 역 내에 있는 야키소바집에 들러 술 한잔을 한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꿈속에서 하루의 잔상들이 흑백 필름처럼 보인다.
주말에는 빨래방에 간다. 빨래를 돌려놓고 사진관에 간다. 지난주에 맡겨 놓은 사진을 찾고 새 필름을 산다. 사진은 모두 흑백 사진이고 대부분 ‘코모레비’(木漏れ日). 직역하면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의 순간’들이 담겼다. 집에 돌아와 마음에 드는 사진만 골라 박스에 넣어 보관한다. 대청소를 하고 책방에 간다. 한 권에 1000원 코너에서 일주일 동안 읽을 책 한 권을 고른다. 주말에만 들르는 선술집에서 여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내용은 이토록 심플하다. 한 사람의 일상과 루틴을 조용히 지켜보게 만든다. 대사도 별로 없는 하루에, 눈길이 가는 건 그의 미소다.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처럼 잠깐씩 보여주는 미소가 빛난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그림자 같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사람처럼 보인다. 눈에 띄지 않게 일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남들이 몰라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사라진다. 가끔씩 눈이 마주칠 때 건네는 눈인사를 받아주는 타인은 거의 없다.
일상을 깨트리는 건 주변 사람들이다. 잊었던 조카가 찾아오기도 하고, 함께 일하던 청년이 갑자기 그만두기도 한다. 단순한 하루로 다시 돌아오는 그의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힘이 세다. “그림자가 겹쳐도 아무 변화가 없네요.”라는 말에 히라야마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니. 그런 바보 같은 말 안 믿어요.”라고 말한다. 매일 같은 햇살과 그림자라도 다르고 그것들이 쌓여 변해간다고 믿는 사람이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을 살고 있는 존재이다.
똑같은 일상이라도, 지루해보이는 삶이라도 내가 선택한 것들이 있다면 누구든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이 영화는 응원한다. 당신의 하루에도 코모레비가 있다고. 그 빛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남자의 얼굴은 코모레비 자체가 된다. 햇살과 그림자가 표정으로 발휘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차 안에 울려 퍼진다. ‘이 오래된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야. 별들이 빛날 때,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잖아. 소나무의 향기,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잖아. 자유는 내 것이야. 나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체 하루를 살고 있는 느낌이 종종 든다. ‘좋아요’를 받기 위해, 남들이 선택하니까 따라갔던 하루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나는 알고 있을까. 나만 알아도 되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일상의 기쁨. 그것을 매일 찾아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서 빛나고 있다.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것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