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습득하는 "오타쿠"적 삶의 적응기
오늘도 와가마마 (わがまま 제멋대로) ㅇㅇ상은 회사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척척박사 다나카(가명) 상에게 또 한 소리 듣는다. “ㅇㅇ상, 그건 ㅇㅇ상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언뜻 들으면 일을 열심히 하고 심지어는 주어진 데드라인보다 더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ㅇㅇ상을 걱정하는 소리 같지만 실은 일을 더 빨리 끝내면 나 말고도 주변 사람에 여파가 있으니 제발 일을 벌이지 말아 달라는 속뜻이 담겨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하면 “안된다” 저렇게 해도 “안된다”라는 말을 듣고 다니는 조직의 골칫덩어리! 저렇게 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프로젝트를 결국은 완수하고야 마는 그런 나를 내 외국인 보스는 내심 반기지만 겉으로 들어내 놓고 내 편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청개구리의 습성을 가진 나인지라, 안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어 지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내 나름의 잔머리를 굴려 해낼 방법을 생각해 낸다.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는 하루하루는 쌓이고 쌓여 이제 1409일.이런 수많은 날들의 끝에 얻어지는 것은 쌩한 바람이 부는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고독함과 이제 막 링에서 내려온 권투선수가 느낄만한 기진맥진 함이다. 이래저래 "안 되는" 것이 많은 이 곳에서는 나는 "나에게 허용된" 작은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선다 (나에게 행복해질 권리는 아직 있는 거지요?)
겨울 주말은 집 근처 온천/센토(銭湯 우리의 공중목욕탕 같은 곳) 순례, 봄에는 동네 근처 레트로 분위기 나는 카페 찾아다니기, 심지어 나는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각 전철역을 돌아다니며 스탬프도 모아봤다. 자, 이쯤에서부터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내가 부쩍 “오타쿠스러워”졌다 느끼기 시작한다.
오타쿠의 탄생,
나의 일본 생활 지침서, 이응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 일본 편에는 그렇게 나와있다.
일본인들은 "わ 와 (和 우리나라 발음으로 화)"를 중시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에게 주어진 맡은 일에 집중하며, 다른 이의 영역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튀는 행동은 손해로 돌아오기에 겉으로는 사회와 조직이 요구하는 규정에 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개성 있는 사람이기에 "허용된 범위"안에서 무한한 다양성을 추구하고 예컨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것에 깊게 깊게 파고든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오타쿠의 기원이다. 아..... 이거 왠지 내 얘기 같은데... 나는 한순간 오타쿠와의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은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내가 추구하는 제멋대로 세계의 선구자들인 것이다.
"가타(がた;方;방법이라는 뜻의 일본어)"를 중시하는 이곳에서 그들이 군무를 추는 댄서들이라면 나는 자주 엇박자를 내는 무대 위의 무법자, 그들의 방식을 무너뜨리는 무섭고도 한없이 걱정스러운 존재이다. 이곳에 살면서 여기 식으로 생활하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완벽한" 수준으로 따르기 어렵다. 조직의 룰에 맞는 나를 만드려고 나를 쫒아오는 그들도 피곤하지만 그들의 추격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나도 피곤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냥 "yes"라고 대답한다. 그래요 그래 당신들이 맞아요.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핀잔 듣지 않고 할 수 있는 나만의 세계를 이리저리 탐색한다. 우리 집 오타쿠 탄생의 순간이다.
벽에 가로막혔을 때 우리는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그 돌파구가 나에게는 최근 시작한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남편 ㅇㅇ에게는 사진 찍기, 내 동생 %%이에게는 그녀가 스트레스만 받으면 구워대는 빵들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오타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