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 노통브의 소설 '두려움과 떨림'과의 대화
에세이에서 한 문장을 읽는 것과 그것을 체험하는 것은 천지 차이가 있다.
1999년, 한때 일본에서 일했던 프랑스 여자 아멜리는 2019년 같은 나라에서 일을 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었다. 20년이라는 시간 차가 무색하게 나는 그녀가 자전적 소설 '두려움과 떨림'을 통해 고백한 그녀의 회사 생활에 공감했다. 그녀가 활화산 같이 솟아오르는 마음을 삭이며 내뱉는 말들의 의미를 나도 회사에서 몸소 체험하며 같이 울고 웃었다. 아니, 그녀의 아픔도 웃음으로 재창조하는 위트 있는 말솜씨 덕에 웃는 일이 더 많았다.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프랑스 여자 아멜리의 모습은 나의 그것과 묘하게 닮았다. 직장 동료들에게 뭔가 다르고 심지어 약간은 모자라 보이는 그녀는 회사에서 와가마마 (わがまま; 제 멋대로) ㅇㅇ 상으로 불리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멜리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치며 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그녀가 없었던 20년 사이 일본 직장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점이 같은지 생각을 나눴다.
1999년 아멜리의 서(書)
"일본에 동화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외국인은 명예를 걸고 일본 제국의 관습을 지킨다. 그런데 그 반대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들은 남이 자신들의 관례를 어기면 기분이 상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다른 관습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2019년 와가마마 ㅇㅇ상 왈(曰)
일본에서는 개인으로서의 개인이 취하는 입장과, 집단에 속한 개인으로서 취하는 입장이 사뭇 다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 내 의견에 동의하지만, 미팅에서 내 의견이 묻히고 있으면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뒤돌아 서는 동료들이 여럿 있었지요. 그리고 미팅 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해요. "일본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일해요. ㅇㅇ상이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에요. 어쩔 수 없잖아요". 나는 이 일본어 단어 仕方ない(어쩔 수 없네), しようがない(방법이 없네)를 가장 먼저 배웠어요. 동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들이기 때문이었죠.
어쨌든 나는 여기서 그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배워야 했어요. 그러나 반대로 수출 관련 일을 하면서도 그들이 다른 나라 시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보통’ 일본 사람의 한국에 대한 이해는 욘사마와 BTS,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아요.
이곳 방식에 따르라는 요구하는 그들에게 나는 가끔 이렇게 되돌려 대답해요. “나는 외국인이에요.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 사람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는 안돼요.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내가 일하는 방식도 존중해 줘요."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겉으로 말해버리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 되어버렸죠.
아멜리는 어릴 적 보았던 일본 영화 "포로" (영어 제목: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기억하며, 그녀의 상사, 후부키 상에게 괴롭힘 당하는 자신을 영화 속에서 일본군에 의해 처형당하는 영국인의 입장에 투영했다. 이 영화를 본 적 있냐는 그녀의 질문에 영화의 배경이 주는 문제의식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그저 "음악이 좋았어요"라고 대답하는 후부키 상을 보며 아멜리는 이렇게 썼다.
1999년 아멜리의 서(書)
"인식은 못하고 있지만 후부키는 아직도 많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소프트한 개헌주의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지난 전쟁에 대해 자기 동포들이 전혀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시아에 대한 무력 침공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나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제로 그녀와 논쟁을 벌일 상황은 아니었다."
2019년 와가마마 ㅇㅇ상 왈(曰)
내가 태어난 나라는 한국이에요. 20세기 초 일본은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식민지배를 했어요. 때문에 내 나라 한국과 내가 살고 있는 나라 일본은 정치, 역사 문제에 있어 첨예한 대립각을 이루고 있어요. 특히나 요즈음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은 개헌을 하여 전쟁 가능한 나라로 일본을 되돌리고 싶어 해요. 역사문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던 나도 "개헌주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지요. 실제로 정치색을 띄지 않는 일본인들에게도 이 개헌주의적 접근방식은 그들의 사고방식에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나 봐요.
실제로 지인은 일본의 유명 뷰티 회사에 인터뷰를 하며 인사권자로 부터 이런 말을 들었데요. "우리 회사는 유럽과 미국이 리드하는 뷰티 업계에서 그들을 앞서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업계로 거듭날 것이다". 서양에 대한 깊은 열등감과 개헌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아시아를 대표하고, 아시아를 서양의 적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념이 이 회사의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에 투영된 것이라고 지인은 펄쩍 뛰었어요.
나는 일본이 이웃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냈으면 해요. 그 시절 우리나라를 일본인의 손에 내어준 우리의 연약함도 안타까워요.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뿐만이 아닌 다른 그 어느 나라도 마음대로 침략할 수 없는, 힘이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직장 생활 첫날 아멜리에게 그렇게나 천사 같았던 후부키 상은 가면 갈수록 아멜리를 괴롭히는 표독스러운 마녀로 변한다. 아멜리는 서슴지 않고 그녀를 비웃기도 하지만, 그녀는 결국 제도적 모순에 갇힌 피해자이며 동정의 대상이다.
1999년 아멜리의 서(書)
"스물다섯 살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거야, 웃으면 너는 품위를 잃게 돼,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면 저속한 거야, 몸에 털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네 입으로 말하면 천박한 거야... 음식을 먹는 게 즐겁다면 넌 돼지야, 잠자는 게 좋으면 넌 굼벵이야......(중략)... 왜냐하면, 결국 이런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통해 일본 여성들의 머릿속에 박히는 것은, 좋은 일은 절대로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결혼할 의무가 있어. 네 유통 기한인 스물다섯 살 전에 하면 더 좋고, 모자란 사람이 아닌 한, 네 남편은 너한테 사랑을 주지 않을 거야.... (중략)...... 어찌 되었든 간에, 그가 너를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너는 그를 볼 기회가 없을 거야. 새벽 2시, 한 남자가 녹초가 된 데다 종종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와 안방 침대에 맥없이 쓰러진 뒤, 너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6시에 집을 나설 테니까.."
2019년 와가마마 ㅇㅇ상 왈(曰)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회사에는 후부키 상 같은 직원분들이 많이 있어요. 일본 사회는 여성들에게 열심히 일하지만 기회를 주지 않고, "독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갖게 하죠. 이곳은 아직도 여성으로서의 의무는 정말 많지만 권리는 상대적으로 약한 곳이에요. 얼마 전 회식에서 제 앞에 앉아 있던 동갑내기 하츠코(가명)상과 이야기할 일이 있었어요. 그녀가 말하길 첫 발령지가 도쿄 영업 지점이었는데, 지점장 님이 여사원은 고객을 만나는 영업을 할 수 없다며 3년 내내 전화받는 일만 시키셨데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어요. 그러나 그건 모두 내 "선배들"의 이야기였었죠. 그런데 나와 동갑인 그녀가 입사 시절부터 이런 차별적인 대우를 노골적으로 받고 있는 것에 정말 놀랐어요.
나와 그녀, 동시대를 살았지만 한국에서 사회에 첫발을 디딘 나와 일본에 있던 그녀의 첫 직장 생활은 너무나 달랐죠. 나는 작은 외국계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죠. 나의 멘토, 대리님과 이사님은 모두 여자분들이셨어요. 똑똑하시고 능동적으로 의견을 표현하시고. 그분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분들처럼 해외 근무도 해 보고 승진도 해서 훌륭한 매니저가 되어야지" 하는 꿈을 꿨죠. 그 시절 하츠코 상의 꿈은 아마 "언제쯤이면 전화받는 일을 피해 다른 곳으로 발령받을 수 있을까"였을지도 모르죠. 내가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면 나의 당당함에 약간은 삐쭉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하츠코 상은 어쩌면 일본에 살고 있는 많고 많은 후부키 상들 중 한 명 일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멜리. 모든 여자가 후부키 상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언제나 유쾌하고 묵묵히 팀원들을 돌봐주던 팀 어시스턴트 미키(가명) 상은 작년 가을 회사를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날아갔어요. 진정한 자기 꿈을 찾겠다고요. 그녀를 떠나보내며 외유내강형의 멋진 동료를 잃은 것 같아 아쉬웠지만 나는 그녀의 성공과 행복을 빌었어요. 앞으로 제2의 제3의 미키 상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깜박했어요. 이곳에서 변화는 정말 서서히 온다는 것을...
퇴사를 하며 아멜리는 이런 글을 남겼다. 유미모토 사에서의 1년은 직장 생활 시작 전 일본 사회에 대해 긍정적이고 호기심 가득했던 그녀의 태도를 약간은 비꼬는 자세로 바꿔놓았다.
1999년 아멜리의 서(書)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일본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내가, 놀라운 것은, 여기서 자살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략)... 두개골에 구멍이 생긴 동료들과 의무적으로 맥주를 마시고 터질 듯한 지하철을 몇 시간이나 타는 것, 이미 잠든 아내, 벌써 무감각해진 아이들, 물 빠지는 세면대처럼 당신을 빨아들이는 잠, 아무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는 드문 휴가.... 그런데 제일 끔찍한 것은, 이 사람들이 지구 상에서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2019년 와가마마 ㅇㅇ상 왈(曰)
일본으로 발령을 받고 나는 일본 생활에 호기심이 많이 생겼어요.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과,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지들, 항상 친절한 사람들. 그러나 이곳에 몇 년을 보내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라는 진리가 빛을 발했죠. 컴퓨터와 인터넷과 AI가 존재하는 초현대 사회더라도 결국은 일은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고 싶어 하죠. 오죽하면 회사에서는 매일 일정 시간 이후로는 전원을 모두 꺼버립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라는 뜻이지요. 일본 사람들의 회사에 향한 짝사랑은 정말 대단해요. 심지어는 아파서 하루 정도 쉬게 되면 회사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되뇝니다.
이런 사람들과 "열심히"일하는 분위기에 이끌려, 외국인이지만 너희만큼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냥 많이 일했지만 일은 해도 해도 줄지 않고, 병만 더 얻었어요. 이제는 나는 그들처럼 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냥 인정하려고요. 경제 위기를 겪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는 나와 우리나라 사람들, 개인주의 성향에 익숙한 유럽, 미주 지역 사람들은 이런 일본인의 자세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나의 건강과 가족을 희생하면서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인생이 왜 그들은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나와 "애증의 관계"에 있는 대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회사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자기 개발서의 조언대로 그들과 프로페셔널하게 일은 처리하되 그들로부터 마음을 다치지 않게 나를 보호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본에서 5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뜨거운 심장으로 가진 나는 조직과 프로세스가 먼저인 그들 방식과 많이 다른 방식으로 일했다. 그랬기에 나를 둘러싼 환경과 충돌이 잦았고, 직장인이 흔히 겪는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같은 나라에서 일하면서도 겪을 수 있는 것을 하물며 외국에서 겪지 않는다면 이상할 터"이니 생각하고, 터놓고 이야기를 해서 문제를 풀려하면 그 문제가 더 커지곤 했다. 그렇게 긁어 부스럼 만드는 와중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이 책을 만났다.
아멜리 노통브는 이 자전적 소설을 통해 "제도에 충실할수록 결과적으로 제도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일본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배꼽 쥐게 웃기는 톤'으로 풀어냈다. 그녀의 신랄하고 통쾌한 이야기 덕분에 직장 생활이 한결 가볍게 느껴지고 마음이 풀리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일본 직장에서 짠내 나는 생존기를 거치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는 연대의식마저 느껴진다. 이 나라가 이 나라에 발 붙이는 모든 이에게 원하는 그 "두려움과 떨림"의 자세로 이 나라의 문화와 방식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