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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Sep 17. 2023

우리 엄마를 사세요

우리 엄마라는 아름다운 사람, 힘나는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엄마의 67번째 생일날 엄마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어느덧 700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떠나보내고도 5년 이상 내 일기장 곳곳을 채우던 엄마의 이름은 신기하게도 책 출간 이후 쓴 글에는 비중 있게 등장한 기억이 없다. 물론 엄마를 잊었다거나 엄마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졌다는 뜻은 아니다. 마치 내 인생이라는 책의 한 챕터가 끝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듯, 온갖 감정이 가득한 글을 쓰던 시절과 그런 내가 아득하게 멀어진 느낌이다.


재작년 여름께 출간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초판으로 몇 부 정도가 좋겠냐는 질문에 처음 대답했던 꼭 그만큼의 부수가 사람들의 손에 전해졌다. 친구들이나 지인들 말고 누가 사서 볼까 싶었던 책들이 대형 서점에서 팔려 나갔다고 하고, 몇몇 독립책방으로 입고 제안이 오고 가고, 또 직접 책을 들고나간 행사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게 '작가님'이라며 사인을 받아가는 경험은 여러 가지 감정 중에서도 신기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냥 엄마에 관한 글을 모아 책을 내고 싶었을 뿐, 책을 내면 작가가 된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기에 여전히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열없고 낯설어서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뇌곤 한다. '아, 내가 작가지, 참.'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일 치고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손꼽을 정도로 출간이 내게 가져다준 기회와 그 의미는 컸다. 책으로 맺은 우연한 인연들은 하나같이 오래오래 기억할 에피소드와 함께 왔고, 글과 책을 주제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도 얻었다. 책 팔아서 얼마 벌었냐는 질문에 '손해는 안 봤어'라고, 다음 책이 언제 나오냐는 질문에는 '글감은 늘 있으나 책감이 쌓이지 않는다'라고 대답할 뿐이지만, 출간해서 좋았냐는 질문에는 '그럼!' 하면서 밤이 새도록 신나게 떠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쌓였다. 내 책이지만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그 독자의 삶과 연결되어 그의 이야기가 되었고, 나와 연결된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찾고 모아가는 데 나는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껴왔던가 보다.


출간 2주년을 향해 가는 지금, 아직도 간간이 내 책을 사 주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있고 나를 작가라 불러주는 모임에도 가끔 초대받지만, 제1 자아의 생업에 큰 변화가 있는 연유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잠시 따로 떼어 저 한편에 둔 상태다. 그 사이 출간계약의 종료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계약 종료가 곧 내 책이 우주 속에서 사라진다는 뜻은 아닐지라도, 가장 접근성이 좋은 유통처를 잃는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우리 엄마 이야기를 읽고 그 이름을 부른다는데 큰 의미를 두었던 내게 하나의 사건이다. 오고 가는 모든 것에 대한 감흥이 남들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듯한 나는, 책의 절판도 계절이 바뀌고 아이가 자라는 것과 같은 순리처럼 느껴지지만 다만 안타까운 점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책을 출간함으로써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다시 꺼내어 되살려 놓았던 우리 엄마라는 아름다운 사람, 힘나는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을 좀 더 많은 세상 사람들이 만나야 하는데, 이제는 그럴 기회가 줄어든다는 아쉬움이다.


내가 알기로 현재 재고 수량은 출간 직전 내가 찍고 싶은 초판 부수를 말하자 '그러면 너무 팔 게 없는데'라던 출판사 실장님이 늘린 부수만큼이다. 제목과 표지삽화에 이어 부수까지 삼 연속 실장님과 달랐던 내 의견이 이번에도 좀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거나 마지막 남은 한 달 동안 좀 더 애써 볼 결심을 했다. 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우리 엄마 이필숙 씨를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많음을, 이 책으로 자기 삶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사람들이 있음을 믿고, 그건 내가 이 책을 출간한 첫째 되는 이유이자 내가 앞으로도 계속 작가로 불릴지 말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여러분, 제 책 <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를, 저희 엄마를 사서 여러분 책장에 들여놓으세요.




책의 초고를 엮은 브런치북 인사이트 리포트. 추천 알고리즘에 한번도 걸려본 적 없으나 동일 키워드 브런치북과 비교했을 때 완독자 비율과 라이킷 비율이 월등한 편이다. 자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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