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란
언젠가 같이 일하는 회사 선배가 메마른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회사에서 만나는 작품들로부터 커다란 감동을 경험해본 적 사실 별로 없다고. 일로서 대하는 작품들은 처리하는 대상일 뿐으로 느껴진다고. 그래서 자기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자주 다닌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공간에서 보는 작품을 통해 예술적인 감동을 느낄 때가 더 많다고 했다. 그 선배와는 종종 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기에 아마 어디론가 차를 타고 같이 이동하던 중에 나눈 이야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보다 한 4년 정도 선배인 그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참 모순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경매를 치르기 위해서 검토해야 하는 작품은 기본적으로 200점 정도이고, 많으면 300점 이상이다. 항상 시간에 쫓겨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작품들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고, 작품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점점 도끼눈으로 변한다. 예술작품들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그것을 만나는 상황과 장소가 중요한 것 같다. 성격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지만 그 사람과 만났던 상황, 장소의 미묘한 마력에 이끌려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로 내가 처리해야만 하는 업무로서의 작품과 박물관/미술관/갤러리에서 만나는 작품의 느낌이 다르다. 같은 작품인데도 그렇다. 이런 혼돈의 상황을 심심치 않게 마주하는 나로서는 예술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좀 더 명확하고 날카롭게 다듬어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매번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품 경매라는 맥락에서 만나는 작품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가장 좋았던 작품을 지금 떠올려 보면 제일 먼저 단원 김홍도의 <고사소요도>가 떠오른다. 그믐달이 떠오른 밤, 시동도 없이 홀로 산책을 나온 한 고사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다. 화면 가운데 굽이치는 매화의 형상과 그 아래 흔들리는 풍죽, 그리고 먹먹한 표정을 띤 인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공간을 노니는 고사의 귓가에는 대나무가 잔잔히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매화가 피어난 것을 보니 아직은 쌀쌀한 늦겨울의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셨을 것이다. 김홍도는 왜 이런 장면을 그렸을까? 그림 속 인물이 본인이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어떤 고민이 그를 밤 산책에 나서게 했을까?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원고를 쓰던 당시의 나도 글을 써내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잠을 못 잤던 것이 떠오른다. 흠. 작품의 소재도 좋았지만 화면에 구사된 모든 필치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고, 그것이 너무 신기해 몇 번이고 이 작품을 꼼꼼하게 훑어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회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예술적 감동을 느꼈던 작품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은 내가 굳이 애써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도 곧바로 수긍한다. 1억 원에 시작했던 이 작품은 1억 5천5백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배움과 경험을 쌓게 했던 작품도 있었는데 이 역시 단원 김홍도가 그린 <공원 춘효도>다. 이 작품은 미국의 어느 소장가가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던 작품으로 2007년에 정병모 교수님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팀장님과 함께 소장가와 직접 콘택트하고, 작품을 미국에서 어렵사리 들여오고, 또 작품을 조사해서 원고를 작성하고, 경매에서 판매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다. 늘 하는 일이었지만 워낙 중요한 작품이었고 국외에 있던 작품이어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회사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대표적 장르인 풍속도를 사상 처음으로 판매하는 것이었고, 또 과거시험장의 모습을 담은 희귀한 작품이었기에 매스컴의 관심도 꽤 많이 받았다. 작품이 전시장에 걸리던 순간이 떠오른다. 미국에서 들어온 이후에 간단한 수리와 재표구를 했었기 때문에 경매 프리뷰가 진행되고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전시장에 걸리게 되었는데 '드디어 너를 만나는구나!' 하는 반가움과 '네가 나를 힘들게 했구나!' 하는 원망이 뒤섞였다. 작품은 당연히 고미술 경매의 하이라이트 작품이었고 작품이 낙찰되었던 그 순간에 팀장님의 낙찰봉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고 명랑하게 들렸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