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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뒷간 Jun 22. 2021

런던에서 만난
서도호, 백남준

장윤나


걸어서 작품 속으로! 

1. 




2019년 12월, 154회 메이저 경매를 끝내고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거의 2주간의 연말 휴가가 주어졌었다. 밤낮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바빴던 경매가 끝나고 바로 긴 휴식의 시간이 생겼으니, 당장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리고 나는 휴가 첫날에 바로 다음 날 출발하는 영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사실 파리, 빈, 프라하 등 여러 나라가 휴양지 후보에 있었지만, 내가 런던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당시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백남준 대규모 회고전이 가장 큰 이유가 됐다. 그 전시는 백남준의 주요 작품이 포함된 200여 점으로 구성됐고, 무엇보다 테이트 모던에서 한국 출신의 예술가가 집중 조명되는 일이 처음인 전시였다. 그렇게 전시 하나를 꼭 보겠다며 15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런던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피카딜리 역 출구에서 나와 처음으로 맞이했던 런던의 겨울밤공기에 코끝이 시렸지만, 거리에 장식된 트리나 조명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따스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거리 (1)



12월 28일 여행 5일째 되던 날, 숙소는 스피타필즈 쪽에 두고 백남준 전시를 보러 테이트로 향했다. 2층 빨간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중 멀리서 익숙한 한국 전통 가옥이 단번에 눈에 띄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서도호 작가의 <Bridging Home, London>(2018)라는 설치 작품이었다. 1991년, 서도호 작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했고 집, 기억 그리고 이주라는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낯선 나라의 높은 빌딩 숲 한가운데 어디선가 툭 날아와 불시착한 듯한 작품에서 이방인으로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을 작가가 떠올랐고, 비록 짧은 여행자였던 나도 이내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수업 때 이 작품을 사진으로 보면서 언젠가 꼭 실물로 봐야지 했던 터라 무척 반가웠고 그런 작품을 또 우연히 마주해서인지 여행 중 얻은 보물 같은 순간으로 기억된다. 버스에서 내려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지나, 템즈강을 건너 도착한 테이트 모던 앞 광장에는 백남준 전시를 알리는 휘장이 들어서 있었다. 1층에서 티켓 발권을 하고 3층으로 올라가 드디어 전시실 앞에 도착했다.



(좌)서도호 <Bridging Home, London> (2018)*  (중)테이트모던 광장 앞 걸린 백남준 전시 휘장  (우)3층 전시장 입구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스물아홉 살 청년 백남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작품은 <Hand and Face>(1961)로 영상 속 그는 쉴 새 없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드러내는 것을 반복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얼굴을 더듬어나가는데, 마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한 제스처로 느껴졌다. 나는 젊은 날의 백남준을 뒤로한 채, 이후 어떻게 그만의 미디어 아트 작업으로 발전하게 될지와 곧이어 등장할 작품들을 기대하며 다음 방으로 건너갔다. 다음 전시 공간에는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렸던 첫 개인전이 재현돼 있었다. 개인적으로 해당 전시에서 가장 중요했던 작품 군이라 생각하는데, 백남준은 자신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미디어 아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로서도 혁신적이었던 TV를 활용한 관객 참여 작품이 있었는데, <Foot Switch Experiment>(1963)가 그중 하나였다. 설마 이게 구현될까 하는 의심에 직접 발로 페달을 눌렀는데 순간 소멸하듯 변하는 화면을 보며 역사적인 전시의 한 순간을 경험해본 것 같았다. 



백남준 <Hand and face>(1961)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재현 전시 전경



백남준의 전시는 총 12개의 섹션으로 구성됐고, 순서대로 ‘소개’. ‘TV정원’,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 ‘실험’.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햄’, ‘자아성찰’, ‘전파’, ‘플럭서스’, ‘샬롯 무어만’, ‘요셉 보이스’, ‘촛불 하나’, ‘시스틴 채플’로 나눠졌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선 백남준의 초기 활동을 짚었다면, 중간부터는 연대기와 상관없이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다. 특히, 존 케이지와 샬롯 무어만 그리고 요셉 보이스 등 백남준과 긴밀히 협업한 작가들도 전시에서 비중 있게 다뤄져 많은 공부가 됐다. 그 해 테이트에서 본 백남준의 작품들은 50여 년에 걸친 그의 예술 세계를 망라한 전시였고 그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작품들을 본 소중한 경험이 됐다. 



백남준<Three Camera Paticipation/Participation>(1969) 
백남준 <OVERLEAF Internet Dream>(1994)



2년 전의 전시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2021년 6월, 161회 메이저 경매 전시를 오픈해두고 살짝 한 템포 숨을 돌린 와중이다. 이번 메이저 경매가 (단일 경매 기준) 2008년 이래 국내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하고 작품의 수도 많아 준비가 쉽진 않았지만, 그만큼 주요작이 많이 출품되어 귀한 작품을 다뤄볼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특히, 이번 메이저 경매 출품작 중 백남준의 <Tower>(2001)를 보면서 영국에서의 전시가 떠올라 이번 글을 시작하게 됐다. (또, 코로나 발생 전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여행이라 그런지 자꾸만 그때를 돌이키며 추억하게 된다.) 2001년에 제작된 출품작은 멀티 모니터들이 쌓여 높은 타워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작가가 한국 전통의 탑의 형태에 모티프를 얻어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높은 형태의 백남준 작품을 본 것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소장품인 <다다익선>(1998)과 원주 뮤지엄 산에 있는 <커뮤니케이션 타워>(1994)에 이은 것이었다. 이처럼 한국 전통에 영향을 받아 작업을 한 백남준은 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뿌리와 바탕이 한국에 있음을 담아내고자 했다. 



백남준 <커뮤니케이션 타워>(1994)




날 자꾸만 서양에서 다 배운 사람인 줄 아는데,
사실 내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모두 흡수한 것이지. 

                                                                  – 백남준




글 서두에 언급한 서도호의 작품에선 낯선 이국 땅, 자신이 겪었던 문화적 다름의 충격이 작품에서 충돌의 이미지로 표현됐고, 백남준의 경우 붓과 캔버스를 대신한 TV라는 매체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각자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연결하고자 했다. 유목민적 특성을 띄는 두 작가에게서 각자의 작품의 이미지로서의 보이는 형태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인지에 대한 비슷한 고민을 했던 흔적들이 그들의 작업을 통해 느껴지는 듯했고, 궁극적으로 두 작가 모두 예술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소통하며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난 여행을 마무리해본다. 








*
서도호 작가의 <Bridging Home, London>(2018)
작품은 리버풀 스트리트(Liverpool Street)역 근처 윔우트 스트리트(Wormwood Street)의 빌딩 가교 사이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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