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직장상사의 간섭과 충고에 대한 고민
늦은 저녁, 야근하고 있는 후배사원 고대리의 표정이 어둡다.
“고대리, 저녁은 먹고 일하는 거야?”
“네, 먹었어요. 욕도 같이요.”
“응….?”
“사실 친구와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는데, 오늘까지 해야 하는 일이 안 끝나서 약속을 급작스럽게 취소했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못 만나겠다 친구한테 이야기 했더니, 야근은 해도 밥은 먹으며 해야할테니, 회사 앞에서 간단히 밥이나 먹자꾸나 해서 후다닥 밥 먹고 왔거든요.
밥 먹고 들어왔는데, 왜 자리 비우는데 이야기를 안 하느냐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시더라구요. 아니, 퇴근 시간도 이미 지났고
후다닥 먹고 올 요량이라 구구절절 이야기 드리고 가기가 그래서 그랬는데, 그게 그렇게 혼날 일인가요?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전화 하셨으면 되는거구요.
개인적인 생활도 포기하고 회사 업무 때문에 야근하는 상황인데 그 부분에 대한 고마움은 생각도 안 하시고, 고작 말씀 안 드리고 갔다고 뭐라 하시는 건 제가 뭐라고 이해해야 하는거죠?”
“음…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사실 업무적인 부분에 대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 각도에서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보면 된다. 그건 어쩌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이렇게 뭔가 관계에서 감정이 상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전방위로 상황이 파악 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어머 진짜 나쁘다” 같이 맞장구 쳐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심상해 있는 사람한테 “그 분도 다 그럴 사정이 있었을거야~ “ 하는 식의 이야기는 공자왈맹자왈 수준의 이야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고대리의 에피소드 외에도, 이런 류의 상황들은 조직 문화가 날로 수평적 개방적이 되고 있다고 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경우들을 좀 보자.
“C과장, C과장은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다녀요? 회사 나오기 싫어?”
“A씨, 걸음이 왜 이렇게 껄렁껄렁해? 옛날에 침 좀 뱉었나봐?”
“B대리, 상사가 서서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앉아서 들을 수가 있어? 정말 요즘 친구들은 이해가 안돼. 나 예전 사원, 대리 때는….”
여기서 이러한 이야기들은 굉장히 막역한 사이에서 주고 받은 이야기가 아님을 전제로 하므로, 십중팔구는 저런 이야기를 듣는 팀원들은 안면홍조를 동반한 혈압상승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보통 아래와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물론… 슬프게도 속으로.
C과장 : “아니, 나 원래 얼굴이 웃는 상이 아니라고! 어떻게 조커처럼 얼굴이라도 뜯어 고쳐야 해?”
A씨 : “그래 놀았다. 참나..내가 회사 와서 해달라는 일 해주면 되지,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해?”
B대리 :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자리에 오셔서 이야기 하시는데, 여기가 어떻게 매번 일어나서 차렷하고 듣나? 아니 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신가?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다. 이런 경우를 나는, ‘팀원의 태도(Attitude)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분류에 넣어두고 생각하고 있다. 열 받았던 자신의 이전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읽고 계신 팀원 분들 중에 ‘아니 저런 짜증나는 상황을 멀 그리 우아하게 표현해? 뭐긴 뭐야 막말 하는 경우지!’ 하고 생각하신 분들 잠시만 더 읽어보아 주시길 부탁 드린다.
상사는 기본적으로 팀원에 대해서 피드백을 해야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인즉슨, 상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팀원에 대해 그 어떠한 피드백도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이야기이다. 만약 우리 팀장님으로부터 한 번도 어떠한 피드백도 듣지 못했다 라면, 그간 속은 편했을지 모르겠지만 성장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상사 팀원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그 피드백의 범위이다. 상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직원에 대한 의견 제공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를 물었을 때, 팀원들이 생각하는 범위보다는 훨씬 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누가 맞다 틀리다 논쟁이 심해질 땐, 가장 간단한 방법은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생에 무슨 연이었는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상사와 팀원. 그들은 왜 만나게 되었을까? 정답은 “일하려고”이다. 유교사상이 지배적인(요즘은 그도 너무나 많이 바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야기 하면, 많은 선생(나보다 먼저 태어난)님들께서 분노하실지 모르겠으나 일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관계는 그냥 동네 아저씨(혹은 아줌마)와 젊은이 사이지 뭐겠는가. 동네 아줌마가 옆집 총각이 다리 떨고 다녀도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이라면, “총각 다리 좀 떨지 마슈” 라고 말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요즘은 옆집 고딩 총각들이 너무 무서워서 실제로 해를 끼치는 애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비유가 좀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풀어 이야기 하면 우리가 같은 조직이라는 한 배에서 한 방향으로 노를 저어가기 위해서 만난 사이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효율/효과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누구는 선장이 되고, 누구는 선원이라는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역할 수행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본질이다. 따라서 모든 상사의 피드백은 업무와 성과라는 대전제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상사분들 질문이 있으실 수 있겠다.
”아니 그럼 일 말고 태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란 말인가?”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태도도 중요하다. 성과를 내기 위한 기저 요소인 역량이라는 관점 안에도, 지식(Knowledge), 스킬(Skill), 태도(Attitude)라는 3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태도도 역시 성과와 연계된 개념에서 나오게 되는 이야기다. 상사인 내 자신의 호불호 관점에서 판단하는 태도적 요소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아까의 C과장이 고객을 응대하는 접점 직원인데 표정이 안 좋다 라면, 그건 엄연히 그가 실제로 발휘해야 하는 고객만족역량적 요소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그런 관점에서 얼마든지 개선을 위한 피드백을 제공해도 괜찮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 왠지 나를 보면 잘 안 웃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나쁜 팀원이 있다면, 그건 좀 ‘글쎄요’다. 일 잘하는 팀원이라면 까짓 거 나를 보고 생글생글 안 웃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어질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역으로 생글생글 잘 웃는데 일 엉망진창으로 하는 팀원보다는 내 봉급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는가?
그래도 만약 정말 정말 못 참으시겠다면, 이런 팁을 추천 드린다. 개인에게 인신공격성으로 태도 지적을 하지 말고 좀 더 큰 대의적 관점에서 이야기 하시라고. 예를 들면, C과장에게 바로 이야기 하시는 대신, 팀 미팅 자리에서 “나는 우리 팀이 Fun하게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에 일조하고자 항상 밝고 웃는 얼굴로 서로를 대하면 좋겠어요” 뭐 이정도. 그렇지만 큰 기대는 안 셨으면 좋겠다. 보통 이런 경우 C과장을 제외한 원래 잘 웃던 팀원들만 더 웃는다. 사람의 본성이나 오래 배인 태도 자체를 한방에 뜯어 고친다는 생각 자체가 원래 무리다. 무리한 일에 너무 진 빼시는 고생, 때론 무엇을 위한 일인지도 모를 그 고생을 너무 많이 안 하셨으면 좋겠다.
가끔 나는, 모든 것에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사 분들께 부탁 드리고 싶다. ‘나는 저 팀원의 업무 상사이지, 저 친구 인생의 상사는 아니다’ 라고 생각해주시라고. 더불어 상사 분들의 연륜과 경험은 당연히 존경하지만, 그게 상사가 모든 측면에서 팀원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해도 된다고는 아니라고 가끔씩 떠올려 주시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오해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비록 일로 만났어도 그 안에서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아직도 많은 이전 상사들과 진심으로 멘토 멘티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인생에 대한 충고는 그렇게 마음이 열린 관계에서만 상대에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