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빈 서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금 다시 계몽』. 이런 책을 쓴 스티븐 핑커를 글쓰기 책으로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책은 그 두께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스티븐 핑커가 글쓰기 책을 냈다고 했을 때 그저 글 잘 쓰는 학자가 글쓰기에 대한 소회를 엮은 책이라고 여겼는데, 웬걸 그게 아니다. 본격적인 글쓰기 교본이다. 인간의 인지와 언어를 진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그가 『아메리칸 헤리티지 영어 사전』의 어법 패널의 의장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영어로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직접 소개하고 있다. 과제 보고서를 쓰는 학생, 블로그, 칼럼, 리뷰를 쓰는 비평가나 작가 지망생, 학계, 관료, 법조계 인사, 의학계 연구자 등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글쓰기 조언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류에 내가 꽤 많이 속해 있다.
한국어 독자로서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일반적인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영어’ 사용법에 관한 내용이다. 앞부분도 그렇지만 뒷부분도 나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앞의 내용은 어쩌다 ‘작가’라는 타이틀도 가끔 쓰게 되는 사람으로서, 뒤의 내용은 오랫동안 영어로 논문을 써왔지만 아직도 영어 교정을 받으면 시뻘게진 파일을 받게 되는 과학자로서 그렇다.
일반적인 전문가의 글쓰기에 관해서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에 관한 부분은 특히 곱씹어야 하는 내용이다. 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전문가의 글 중에는 알고 있는 것은 많고, 또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도 알겠는데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글이 많다. 책이고, 신문의 칼럼이고 마찬가지다. 스티븐 핑커는 그 이유를 자기 중심성에서부터 찾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내용을 독자는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는 어렵지 않게 통용되는 단어를 독자는 알지 못하고, 자신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내용을 독자는 모른다는 사실, 자신은 쉽게 떠올리는 장면을 독자는 머릿속에 그려내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는 어려운 글을 쓰고, 독자는 권위 있는 저자의 글을 이해하는 데 골머리를 썩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책을 쓸 때 편집자가 내용을 보충해 주기를 원하거나, 고쳐 쓰기를 권했던 것들이 다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지식의 저주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티븐 핑커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읽혀보라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 쉬운 단어를 찾고, 구체적인 묘사와 설명을 하는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정말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인지를 알고, 또 고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 바로 미리 읽히기인 셈이다. 다행히 난 이 일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기까지.
그 밖에도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많다. 영어에 한정된 내용도 그렇다. 그런데 세세한 문법적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제시한 원칙, 즉 ‘비판적 사고와 성실한 사실 확인에 관한 원칙’이라고 하고 있다. 사실을 반드시 확인하고, 논증의 견고함을 확인하고, 자신의 일화를 보편적인 것으로 착각하지 않고, 거짓된 이분법을 경계하면서(세상의 모든 것을 두 개의 학파로 나누지 말라!)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스티븐 핑커는 이 놀라운 책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우리가(정말 ‘우리’라고 할 수 있을지) 책을 쓰는 이유다.
“우리가 스스로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늘 상기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더 잘 퍼뜨리기 위해서, 우리가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늘리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