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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19. 2024

운명의 결정

벤 스탠거, 『하나의 세포로부터』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세포가 생겨난 후 분열을 거듭하면서 최종적인 유기체로 발생하는 과정은 가장 신비한 과정 중의 하나다. 과학은 2백 년 전부터 이 과정에 대한 이해를 더하면서 적지 않은 것을 밝혀왔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의사이자 발생생물학자인 벤 스탠거는 과학자들이 하나의 세포부터 유기체가 발생하는 과정을 밝혀온 이야기, 그래서 지금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그것들이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더 밝혀야 할지를 이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발생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진화생물학, 미생물학, 줄기세포 생물학, 암생물학 등등의 학문 분야를 넘나들고 있는 저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금도 이 질문이 수수께끼이자 해결하지 못하는 질문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달걀이 먼저임이 분명한데, 저자는 이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바로 배아, 즉 세포 하나에서 생명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운명의 결정, 즉 본성(nature)와 양육(nuture)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한 세포의 운명이 어디까지가 유연성을 지니며, 또 언제부터 결정되는지의 문제는 오랜 발생학의 과제였고, 과학자들은 이를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 그리고 이 해결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줄기세포를 찾아냈고, 암 발생의 비밀을 엿보게 되었다. 또한 후성유전학 조절이 세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기여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한스 드리슈가 성게 알을 가지고 분리된 할구의 운명을 연구한 이래의 각 분야에서의 서로 연관되지 않은 듯한 연구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아져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과학사(史)와 관련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역사를 모르고서는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의 중요성을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중간에 미국의 과학과 유럽의 과학을 세포에 빗대 비교하는 부분이 있는데, 유럽식에서는 세포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미국식에서는 “이웃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분야의 맨 앞에서 서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현역 과학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것은 과학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과학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 과학의 성취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소는 전문적인 내용도 없지 않지만, 최대한 대중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순화시켰고, 따라서 과학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이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다만 조금 준비는 필요할 따름이다(“기회는 준비된 마음에 깃든다.”)


과학책을 읽는 것은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다.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에 대한 이해를 보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알고 있는 것과 알아가고 있는 것, 알아야 할 것들이 적절히 조화된 책이 바로 이 책, 벤 스탠거의 『하나의 세포로부터』다. 


* 새롭게 알게 된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이제야 알게 된 것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파리의 배야가 수정 이후에 세포질은 분열하지 않고 핵만 분열해서 핵만 증식한다는 것이다. 열 세 차례의 분열이 이루어지는 동안 핵만 분열하기 때문에 파리의 ‘하나의 세포’에는 약 6000개의 핵이 빽빽이 들어찬다. 그 이후에야 핵 사이에 경계가 생기며 세포가 구별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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