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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Sep 03. 2024

30분 걷다가 엉엉 울어버린 40살

출산 80일 앞둔 8개월 고령 임산부입니다.

마흔에 임신. 이제 80여 일 뒤 출산을 앞둔 나. 오늘은 28주 3일 차를 지나는 날이다.  체중은 이미 8Kg이 늘었다. 어느새 고봉밥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 내 배가 아직도 낯설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하루에 5000보는 걷자고 목표를 잡았고, 그 후로 계속 조금씩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걷자고 마음먹은 건 그동안 너무 활동이 없는 날이 많아서였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만 있다 보면 어떤 날은 몇백 보도 걷지 않는, 정말 움직임이 없는 나무늘보같은 하루들이 쌓여갔다. 그렇게 신체를 움직이는 활동이 확연히 줄어드니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이 더 빨리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적어도 하루에 5000보는 걷기!


오늘은 재택근무라 오전에 집 앞 카페에 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점심시간에 집으로 왔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오늘 할당량 채워야지'라는 생각으로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30분쯤 걸었을까? 핸드폰 앱의 걸음수를 체크해 보니 아직 3500보 정도다. 공원 두 바퀴 정도 더 돌고 집으로 가면 딱 맞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한 바퀴 더 도는 순간부터 허리(좀 더 구체적으로는 허리와 골반 사이 어딘가)에 통증이 너무 심하게 느껴졌다. 아랫배는 더 묵직해지고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낙성대 공원에서 집까지는 약 10분이 걸리는데 약간의 경사가 진 오르막길이다. 평소엔 뛰어도 갔을 이 길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힘겨운지. 후- 후- 호흡을 하면서 겨우겨우 집 앞에 다다랐다. 큰길에서 좌측으로 빌라 단지를 들어서려면 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이 구간이 '마의 구간'처럼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꾹 꾹 참으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옆으로 몸을 누웠다.


"엉엉엉"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집에 오자마자 우는 나를 보고 놀란 남편이 달려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허리가 너무 아파."

"허리가 아파? 괜찮아? 다른 일 있었던 건 아니지?"

"응. 허리가 너무 아파."

"우리 여보 아픈 거 잘 참는데. 정말 아프구나. 괜찮아? 이리 와."


남편이 허리를 주물러주며 나를 안아줬다. 평소 웬만해서는 아프다 소리를 안 하고 사는 내가 갑자기 허리 아프다고 눈물을 보이니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냥 너무 서글퍼. 걷기도 잘 못하고 힘들어하는 내가. 엉엉"

"임신해서 힘들구나. 걷기 말고 수영장 가서 걷거나 그런 걸로 해야겠다 그렇지? 너무 그렇게 욕심 안내도 괜찮아. 걷기가 힘들면 다른 거 하면 되지"

"응 (훌쩍훌쩍)"


그렇게 10여분이 흘렀을까. 한동안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허리 통증이 사라지고 딱딱해진 배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평소 걸음보다도 천천히, 30분의 걷기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도 힘들다니. 임신 과정이 이렇게도 힘들다는 걸 새삼 느끼는 날이었다. 그래도 조금 쉬고 나니 다시 몸이 회복되어 감사했다. 힘들면 조금씩 쉬어가야겠구나. 무리하지 말아야겠구나. 느꼈다. 걷기는 운동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임산부에겐 걷기도 이렇게 큰 운동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걷기만 매일 규칙적으로 해도 건강할 수 있다는데 진짜 그렇겠구나. 특히 고강도 운동 같은 걸 하기 어려운 임산부에겐 체력을 지키기에 걷기만 한 게 없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걷다가 허리가 아팠다고 해서 나는 하루 5000보 걷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걷다가 힘들면 조금 쉬어가면 되지. 아기를 만나는 그날까지, 나는 하루에 목표한 5000보를 꼭 달성할 것이다. 힘들다고 바로 포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힘듦을 지혜롭게 넘어갈지를 고민할 것이다. 5000보를 한 번에 다 걷기보다는 2500보씩 나눠 걷는 것도 방법이겠다. 하루 20분씩 2번 정도?


너무 안 걷다가 몸이 많이 무거워져서 걷기 시작한 것도 허리 통증이 온 원인일 수 있겠다. 늦게 시작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인 법. 더 늦어지기 전에 지금부터 다리 근력을 키우고 체력을 쌓아보리라. 그리고 집에서 근육 운동도 수시로 하면서 허리 주변에 근육도 늘려가야겠다. 걸을 때 내 자세도 생각해보게 된다. 배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허리를 활처럼 휘고 배를 내밀게 되는데 이게 통증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자꾸 내가 처한 어려움을 생각하다 보니 관련된 정보도 찾아보게 된다. 이렇게 하나 둘씩 나만의 돌파구를 찾게 된다.


또 엉엉 우는 날이 있어도, 난 포기하지 않는 임산부가 될 거야! 건강하게 태어날 나의 아기를 위해서, 누구보다 소중한 나 자신를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건강하고 행복한 육아를 위해서.


40살, 8kg이 찐 8개월차 임산부, 앞으로 남은 80여 일 간 매일 30분 걷기 도전! 오늘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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