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he says no, that means no!
*2020년에 영국 살 때 쓴 글*
집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 티케이맥스를 찾았다. 티케이맥스는 가정용품, 의류, 신발 등의 제품 가운데 이월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대형 상점이다. 찾는 물건이 없어 그냥 닷 돌아가려고 하는데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이가 장난감들이 진열된 아동 코너로 집입하자 자리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엄마 여긴 뭐지?”
“엄마 이건 뭘까?”
장난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능청맞게 연기를 하며 돌아다니는 아이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던 와중 아이의 시선을 강탈한 장난감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쓰레기차였다.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 포크레인, 덤프트럭, 크레인까지 있는데 쓰레기차가 없다고 여러번 이야기했던 아이였다.
“쓰레기차 갖고 싶어?”
“응!!!!”
쓰레기차 장난감 박스를 손에 쥐어주자 아이는 소중한 보물을 갖게 된 것처럼 박스를 꼭 끌어안았다.
바로 옆에 책이 있어 아이가 읽을만한 책도 함께 구경했다. 포유류와 파충류에 관심이 많아진 아이를 위해 동물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내용이나 사진은 너무 좋았는데 아이가 보기에 조금 어려워보이긴 했다. 그래도 기존 가격 18파운드에서 8파운드로 저렴히 판매하는 터라, 구매해서 아이와 함께 동물을 공부하면 좋겠다 싶었다.
“후찬아, 이 책은 어때? 이거 여기 동물이 이렇게 많아 뱀도 나오고 카멜레온도 나오네!??”
“시어!! 나는 이 !! 거 !!”
아이는 다시 한번 쓰레기차 박스를 꼭 끌어안으며 제 의사를 표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설득해보려고 자꾸 책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매장을 청소하시던 한 흑인 아저씨께서 환하게 웃으며 영화 속 대사같은 말을 건네왔다.
“Your son is not a baby, He is a big boy!
He can choose his toy by himself!
If he says yes, that means yes.
If he says no, that means no!”
(네 아들은 아기가 아닌, 어린이야. 스스로 장난감을 선택할 수 있어. 아이가 좋다고 말하면 좋은 거고 싫다고 말하면 싫은거야.)
아저씨는 웃으며 우리에게 아이가 이미 선택할 수 있을만큼 컸다고,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라고 이야기해 줬다.
우리는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
아저씨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책은 다시 내려놓은 채 쓰레기차만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와. 정말 현자다.”
“진짜.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았어. 그치?”
“응. 진짜 지혜로운 분이다.”
“응. 우리 더 후찬이 생각에 귀를 기울여 주자.”
“응.”
이후 저녁 장을 보려고 마트에 들렀다. 과일 코너에서 아이는 산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내 눈엔 딸기가 훨씬 싱싱하고 맛있어보였지만 아이는 산. 딸. 기!! 라고 꼭 짚어 말했다.
‘그래, 난 산딸기가 안먹고 싶지만 넌 먹고 싶을 수도 있지.’
“그래. 그럼 딸기 한 팩, 산딸기 한 팩 사자!”
“응. 좋아!!”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과일을 내왔다. 난 딸기를 집중 공략해 먹었다. 아이는 산딸기를 쪽쪽 빨아 먹고 있었다. 잘 사주지도 않던 산딸기를 어디서 맛본걸까. 아마도 어린이집에서 간식으로 나왔던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잠시 집안 일을 하는 사이 아이가 조용하다. 새로산 장난감 쓰레기차는 레버를 돌리면 쓰레기통 안에 있던 것들이 차 안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 아이는 딸기와 산딸기를 쓰레기통에 넣은 뒤 레버를 돌려 쓰레기차 안에 잔뜩 집어넣으며 큭큭 웃고 있다. 자신이 원하던 장난감 쓰레기차와 산딸기로 저런 장난을 치다니! 창의적이다.
그래도 먹는 걸 그렇게 넣으면 안된다고 이야기해주면서 오늘 하루가 마무리됐다. 자려고 누웠는데, 아까 가게에서 만난 그 흑인 아저씨가 떠오른다. 비록 가게를 청소하고 계셨지만, 그 분이야말로 하버드대 나온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분이라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