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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Apr 08. 2021

사회성 좀 부족한 엄마가 어때서

억지로 하는 일은 반드시 탈이 나는 법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한다. 어느 봄날, 친구 엄마를 따라 나들이를 다녀왔다. 나를 우리 집에 데려다 주신 아주머니는 엄마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애가 참 얌전하고 예쁘더라고요." 아주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엄마는 내게 말했다. "얌전하다는 얘기는 듣기 싫은데..." 그때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나처럼 내성적인 아이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활발하고 적극적인 모습만이 엄마를 기쁘게 할 거라는 것을.


이날 내가 느꼈던 씁쓸함은 학창시절과 직장 생활에서도 종종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인간 관계가 넓고 호탕하며 주변인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이를 두고 '성격 좋다'라고 일컬었다. 나처럼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말수가 적고 주목받기를 꺼려하는 사람은 점차 주변인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중심은 부담스러웠으나 그렇다고 주변으로 밀려나기는 싫었던 나는 사교적인 척, 활발한 척을 하며 한동안 살아보기도 했다. 나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싶어 발버둥을 쳐 보았다. 그러나 연극은 오래 가지 않는 법. 나답지 않게 과한 리액션을 취하고, 불필요한 말을 내뱉으며 떠드는 일상은 나의 마음을 꽤 시끄럽게 했고, 그것이 행복하기보다는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나는 다짐 하나를 마음 속에 새겼다. '그냥 나대로 살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 들어가면서 마치 거대한 특명을 받은 것 같았다. '조리원 친구 사귀기'. 출산이라는, 내 생의 가장 큰 일을 치르고서 내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 시기에도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니. 아,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 씁쓸했다. 왜 어디를 가든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안달인 건지. 수유 콜이 오면 아이 젖을 물려야 했고, 틈이 나면 쉬거나 마사지를 받으며 내 몸을 챙겨야 했기에 나는 다른 곳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단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별로 궁금하지 않은 질문을 해대고 싶지 않았다. '어디 사세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첫 아이세요?' 등등.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나서, 연락하는 조리원 동기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지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그러려면 조리원에 뭐하러 갔어?" 


아파트를 지나다 보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 엄마들을 자주 본다. 가끔은 소외감이 들기도 하고, 나도 빨리 끈끈한 모임 하나를 구성해서 그 속에 들어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곧 내 성격에 대한 자책감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그럴 때면 꽤 깊은 우울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정신없는 육아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도 곧 잊혀지곤 하지만). '난 왜 이리 소심해서 사람도 제대로 못 사귀는 걸까. 우리 아이도 나랑 닮으면 어쩌나. 이러다 육아 정보도 뒤쳐지고 나만 고립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가끔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 또래의 엄마를 만나면 일부러 상냥한 투로 말도 먼저 걸어보며 용기를 내 보기도 했다. 몇 번 만나 안면을 트면 휴대전화 번호도 물어보고, 가끔 이런저런 질문도 할 겸 문자도 보내보고 말이다. 


그러나 억지로 하는 일에는 반드시 탈이 나는 법. 내 마음이 움직이기보다는, 그저 아이 친구와 엄마 친구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하는 노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친한 엄마를 빨리 사귀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교류하는 사람이 적어 하루하루가 좀 심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스트레스를 받을 시간에 아이와 내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더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맞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깊게 소통하면서 따뜻한 관계를 맺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2021년에 내 자신에게 하는 주문이자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자'다. 육아를 할 때, 사람들을 만날 때,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볼 때, 그 어떤 순간이든 마음이 시키는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꼭 그렇게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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