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덕 May 10. 2020

그래서 생각은 많이 해봤니?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어제부터 쏟아지는 빗줄기는 그나마 가늘어졌다.

형님이 공원에서 기다린다는 말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오전 5:40분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애들아, 니들 혹시 여기까지 걸어왔니?" 호주인 공장 관리자가 물었다.

"네, 공장 버스를 태워주지 않았어요. 자전거도 없고, 택시는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걸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전부 내리라는 명령에 항의 한번 하지 못했다.

"이거 큰일인데, 위험한 도로를 이 새벽에 정말 걸어왔단 말이야? 인사팀에 보고해야겠다. 일단 들어가자."

6시까지 출근해야 할 우리들이 오지 않아 걱정되어 공장 출입문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나긴 도로에 동양인 청년 2명이 터벅터벅 걷고 있으니 공장 직원들이 행정실에 신고한 모양이다.


분명 새벽 3시 20분에 출발했는데 공장 도착은 6시 20분. 건강한 청년이 쉬지 않고 3시간 동안 걸었으니 10km가 조금 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당시 나이는 22세였다. 막 군대를 전역하고 떠난 호주였다.

미련한 건지 건강한 건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황홀한 미래를 그려서 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형님 일찍 나오셨네요?" 형님은 계속 뭔가를 적고 계셨다.

"어 왔어? 출발하자" 운전대를 잡은 형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영덕아~ 형이 하는 일이 어떻다고 생각하니?" 사뭇 진지해졌다.

"아버지도 평생을 건축업에 계셔서 크게 이질감도 없고, 어릴 때부터 익숙한 장면이에요."

"그래서 생각은 많이 해봤니?"


오전 6시 30분 기사식당에 도착했다.

일요일이지만 건축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로 가득 메여있었다.

우리도 서둘러 주문을 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분주히 식사를 끝마친 작업자들은 밖으로 향한다.

나도 말없이 라면만 먹었다.


"이봐 자네, 쉬엄쉬엄해~ 빠르게 한다고 될게 아니야" 함께 작업하는 형님께서 안전모를 벗으며 손짓한다.

"네~ 마음처럼 되지 않는군요. 아직 요령이 없어서 그런데 방법 좀 알려주세요" 빗자루 질 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있었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여러 책들과 씨름하며 나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찾으려고 할수록 점점 늪으로 빠지는 나를 발견했다. 늪에서 발버둥 칠수록 더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형님은 나를 따로 불렀다. "생각은 많이 해봤니?"

망설여졌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오후 작업도 마무리되고, 모두 해산하였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형님은 다시 물었다.

"생각은 많이 해봤니?"

"아직 결정 못했습니다 형님. 다 떨쳐내지 못했어요" 조수석에서 나는 앞만 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 결정하기 쉽지 않지, 너의 분야도 아니고,,,,,"


"음,,, 미안하지만 김대리, 안타깝지만 자리를 비워줘야겠어."

"네, 사정이 어려워졌으니 할 수 없군요. 제가 더 열심히 하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와이프와 아이 얼굴 먼저 생각났다.

"지금 바깥 사정도 좋지 않아 아마 어려울 거야, 그래도 김대리는 능력 있으니깐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내 어깨에 한쪽 손을 올리고 팀장은 이야기했다.

"내가 능력이 있다고?"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3개월 만이다. 노동의 땀을 흘린 건.

처갓댁은 한마음 한뜻으로 항상 나를 응원했다. 기가 죽지 않을까,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까.

35년 동안 살아오면서 가족에게는 내가 누가 되는 일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가장인 내가 가족들에게 걱정을 주고 있다.

3개월 정도 쉬면서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나에 대한 잘 모르는 것. 본인이 본인을 모르기 때문에 사용법이 좋지 않다. 그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적 인간 같았다.

한 굴레에서 떨어져 나오니 깊숙한 늪에 빠져있다는 걸 마침내 알게 되었다.


늪에 빠져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생각 많이 했습니다 형님"


손을 뻗어 형님의 손을 잡았다.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사주팔자? 그냥 나 자신을 믿고 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