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일기

by 백수희망생

편의점은 시간에 따라 손님이 정형화된다.

아침에는 출근하는 직장인, 낮술 하는 백수, 도시락 탐내는 어르신. 새벽은 여기에 ‘술에 취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그 결이 비슷하다.


삼계탕과 장어 맛집 사이, 아파트 교차로에 있는 편의점은 저녁 시간이 피크다. 이 시간대 편의점에는 21세기의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볼 수 있다.


미디어에서는 편의점 진상 손님을 조선 시대 맹수처럼 상식 없는 존재로 악마화했지만, 2년 넘게 창의적인 진상짓을 당한 덕에 이제는 일하며 내상을 입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럼에도 일하다가 마음에 앙금을 남기는 손님은 종종 있다. 일하는 사람마다 적응하지 못 하는 손님은 다양한데. 나 같은 경우, 특이하게도 어머니와 자식이 같이 올 때 트라우마가 상기된다.


토요일 저녁 8시. 주 6일 근무하시는 중국집 아주머니는 혼자 오실 때는 유쾌하고 예의 바른 분이다.


하지만 아이와 편의점에 오면 매번 화가 나 있었다.

“엄마는 뭐 먹을 거야?”

“난 안 먹어. 너 때문에 온 거잖아.”

“엄마, 이건 뭐야?”

“네 거 아니야. 장난감 안 돼.”

“이건 돼?”

“그건 비싸.”

그러다가 이내 아이는 어머니 눈치를 보고 문으로 향했다.

“나 안 사도 될 것 같아.”

“그럼 왜 들어오자고 한 거야? 너 엄마 시험하냐? 어? 엄마가 만만해 보이냐고.”

“엄마 미안해.”

“너 그냥 여기 있어. 너 같은 거 필요 없어.”


대화를 듣다 보면 진상 손님을 만났을 때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

사실 두 사람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인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머니가 화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어머니를 분노케 했다.


웃긴 건 억지를 부린 후에 애교를 부리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싫은 척해도 결국 더 사랑받는다. 오히려 욕망에 충실한 건 이쪽이다.

그렇게 욕망에 충실한 아이들은 처세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눈치를 보고 남의 기분을 배려하는 아이들은 자신감이 떨어진다.


사회가 정한 올바름에서 벗어나고 있음에도 오히려 전자 쪽이 더 건강하게 자란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예전에는 이런 사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져 분노했지만, 이제는 그저 머리를 비우기로 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이런 말이 있다.

현명한 자가 제일 먼저 짐승이 되고 바보가 된다. 불리할 때면 나는 그 말을 인용하여 자기 최면한다. 맥주를 마시고, 나는 다시 바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