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백수 일기

by 백수희망생

학기 초에는 조를 짜는 수업이 많다. 조별과제가 있는 수업은 조원끼리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자기소개 시간을 가진다.

요즘은 민감한 시대라 자기소개도 어렵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무례란, 여자친구 있냐 거나 부모님이 뭐하냐 같은 호구 조사가 아니다. 최근에 20대 대학생에게 하면 안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진로’다.

어른들은 그게 왜 실례냐고 할 수도 있는데, 보통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너, 앞으로 뭐 할 거야?”

20대는 보자마자 소름이 끼치는 질문이다.

좀 친한 친구에게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뭘 할지 모르고, 질문을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하다.

요즘은 이런 물음에 대답하기 곤란할 때면 대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

“돈 많은 백수요.”


이렇게 대답하면 웬만하면 질문을 회피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대답을 대학생이 아닌 초등학생이 한 적이 있다.


“너는 꿈이 뭐니?”


그떄는 내가 아동센터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을 가르쳤을 때였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 문제 풀기 싫다고 공부를 왜 하냐는 철학적인 선문답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 효림이라는 초등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효림아,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돈 많은 백수요!”

“그래, 선생님이랑 꿈이 똑같네.”

하지만, 효림이의 꿈은 돈 많은 백수가 아니었다.

“근데 효림아, 돈 많은 백수는 네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어떻게 해야 돼요?”

“빨리 집에 가서 엄마랑 아빠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채찍질해야지. 회사 가서 야근해야 내가 돈 많은 백수가 될 수 있다고.”


효림이는 내 말에 웃었지만, 원장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안 좋아지셨다.

“효림이는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거랑 아빠가 일찍 오는 것 중에 뭐가 좋아?”

효림이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아빠가 일찍 오는 거요.”


나는 그때 효림이가 조금의 주저도 없이 꿈을 바꿀 때, 왠지 이게 정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쉽게 꿈을 바꾸는 아이를 보면, 나는 내 꿈과 진로를 너무 무겁게 설정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저렇게 가볍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무섭다.

꿈을 무겁게 가져야 할지, 가볍게 가져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효림이 아버지는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다수가 희망하는 꿈보다 더 대단한 꿈을 이루신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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