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는 사회에서 잊어버린 가치를 상기시키는 수업이 많다.
그날은 자기 계발 수업이었다.
교수님이 종이를 나눠주고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적고, 팀과 공유하라고 했다.
다른 학생들은 팀과 공유하라는 말에 안색이 안 좋아졌지만, 나는 질문에 당황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쓰고 팀과 공유 해주세요.’
질문을 읽고 뜬금없는 자아 성찰에 들어갔다.
인간관계, 취미, 윤리, 건강, 가족, 직업의식 수많은 가치를 저울질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내 가치를 쉬운 욕망으로 귀결시켰다.
‘바로 돈이다.’
어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짜증난다’ 사용을 금지했다.
‘짜증난다’라는 단어로 학생의 감정을 모두 설명하면 단어 선택 능력이 약해진다는 이유였다.
나는 욕망을 표현할 단어가 부족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
돈.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
돈 벌기.
나의 인생 목표.
집 사기.
정말 빈곤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인간이 지배자가 된 가장 큰 힘으로 ‘상상력’을 꼽았다.
이 상상력으로, 인류는 ‘종교’를 만들었다.
“어르신, 구름에서 번쩍번쩍 빛이 납니다. 그 이유를 모르니 잠이 오질 않습니다.”
“저건 신이 노하신 거라네. 공물을 바치면 괜찮아 질 거야.”
“휴, 그렇구나. 쌀과 보리를 강에 흘려보내면 편히 잘 수 있겠네요!”
또한 인류는 물물 거래가 불편하여 ‘화폐’를 만들었다.
“쌀 드릴 테니, 사과를 주세요.”
“나는 쌀 필요 없소. 감을 주시면 사과를 드리리다.”
“그럼 제가 쌀로 감을 바꿀 테니, 그 바꾼 감으로 사과를 주세요.”
“아이고. 쌀을 바꾸는 동안 감과 사과 모두 썩었구먼.”
“우리 불편하니, 세종대왕 그려진 초록 종이에 쌀 10kg의 가치가 있다고 정합시다.”
인간은 무의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동물이다.
초록색 세종대왕 종이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행복의 가치에 ‘돈’밖에 안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 또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학교 수업이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을 수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가 존재하지만, 사랑과 가족과 사회와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에 대해 논하면 오글거린다고 표현한다.
아이를 낳을 때 돈을 본다.
아이를 돈으로만 보면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돈은 행복의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선 안 되는데, 어느새 돈이 곧 나의 행복이 됐다.
나의 가치는 무엇이었나?
잊어버렸다.
내 친구의 인생 가치는 무엇인가?
생각조차 안 했단다.
이 시대는, 가치 상실의 시대다.